태국여행기록 04

로드무비 2011. 2. 1. 01:56 |

1월 5일, 방콕 Wat Mahathat
영어로 가르쳐주는 명상수업이 있다고 해서 오후 나절을 할애하기로 했다. 예상과 달리 오늘 찾아온 사람은 나 혼자였고 (뒤늦게 온 외국인은 조금 설명을 듣더니 핑계를 대고 도망갔다) 외국계 수도승이 나에게 명상의 의미와 방법을 설명해줬다. 눈을 감고 호흡에 정신을 집중하기, 느리게 걸으며 몸과 발의 모든 움직임을 느끼기. 좋았다고만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시간이 쌓이면서 낯섦이나 두근거림은 줄고, 생각이 없는 상태로 몸에 집중할 수 있었다. 3시간에 걸친 명상이 끝나기 전에 앉아서 숨을 고르며 – ‘그 감정’을 떠올렸다. 보통 몇 가지 일들을 떠올리고 거기에서 감정이 이끌어진다면 명상을 하면서는 그 감정으로 곧장 직진했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코가 시큰해지며 눈물이 차 올랐다. (그리고 이렇게 노골적인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조금 부끄럽지만) 그간 나의 모든 작업들과 생각들이 ‘그 감정’이라는 테마 아래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고 놀랐다. 한동안 정체되어 있던 생각과 감정들이 순간 정리될 때의 차분한 흥분은 잊혀지지 않는다.

 
1월 5일, 방콕 Khaosan Rd
박준의 ‘On the Road’를 읽고 여행을, 장기여행을 꿈꾸기 시작했으니 카오산로드는 이번 태국여행에서 나에게 의미 있는 장소였다. (고백하겠다. 바로 얼마 전까지도, 나는 카오산로드가 카오라는 산에 위치한 길인 줄 알았다.) 태국에 처음 도착해 마주한 새벽 3시 즈음의 카오산로드는 나의 기대와 달리 너무나 ‘격렬했다’. 굉장히 건강하지 못하고 좋아 보이지도 않아 실망했다. 나는 거기에서 누구도 만나지 못했고 어떤 나눔의 순간도 찾아내지 못했다. 아마 새벽에 처음 카오산로드에 갔기 때문이겠지만 그 인상이 강해서 끝내 정을 주지 못했다.

 
1월 6일, Ayuthaya가는 미니버스
오래간만에 버스에서 mp3를 꺼내 들었다. 다운만 받아놓고 들어본 적 없는 제이슨므라즈의 노래가 어울렸다. 햇살이 내가 앉은 맨 뒷자리에 부드럽게 떨어지고, 론리플래닛을 보며 다음 여행지를 그려본다. 갑자기 이 순간이 감동적이고 또 감사했다. 나는 그 곳으로 가고 있다. 이 단순하고 명쾌한 사실. 새로운 예감과 낯선 기쁨이 거기에 있었으면. 책은 그곳에서 당신이 볼 수 있는 이국적인 건축과 아름다운 풍경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택시기사의 끊임없는 흥정이나 쉽게 읽어낼 수 없는 길에 대한 곤혹스러움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Ayuthaya로 가는 버스에서 순간 여행의 기쁨을 읽어낸 나는, 어쩌면 그곳으로 떠나는 여정 자체를 도착할 장소보다 더 사랑하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두 발로 살아가기 위해서 마주쳐야 하는 불편한 것들은 외면한 채 적당히 타협하고 싶은지도 모르고. 아무튼 거기로 가고 있으니 나는 실천하는 사람이라고 변명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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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orldofddanj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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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여행기록 03

로드무비 2011. 1. 30. 02:36 |
1월 4일, 방콕 Sanam Luang
론리플래닛의 워킹투어는 왕실 광장이라는 Sanam Luang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광장은 공사 중이었다. 우리는 ‘세상에 이런 귀한 풍경을 볼 수 있다니!’ 웃으면서 공사장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런 우리를 보며 일꾼 아저씨는 엄지를 들어줬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예상과 다른 현실의 모습을 볼 때가 있다. 이 년 전 토리노의 영화박물관에 갔을 때, 그날따라 피보나치 수열에 불이 들어오지 않았었다. 섭섭했지만 이런 모습을 보는 것이 더 특별하다며 웃으며 돌아왔다. 그 기억이 참 좋았다.

 
1월 4일, 방콕 Wat Arun
내가 가장 좋아했던 아름다운 사원 Wat Arun에서, 외국인 관광객과 현지 소년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누군가가 자신의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고, 상대도 우리들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던 모양이다. 이들은 서로의 카메라로 서로를 기록하다가 결국에는 함께 사진을 찍었다. 내 카메라와 너의 카메라의 경계가 흐릿해진 끝에 친구가 되고, 사진을 보내준다며 연락처를 교환하는 그 모습이 예뻐 보였다.

 
1월 4일, 방콕 SkyTrain Station
키가 크고 눈이 똥그란 친구는 얀, 미소기 밝은 친구는 센. 론리플래닛을 들고 사원으로 향하는 나에게 혼자 여행하냐고 물어왔던 얀과 하루 동안 함께 여행하며 친구가 됐다. 사원과 왕궁에 대한 시답잖은 농담들을 하거나, 재미있는 사진을 찍어주면서. 5월까지 휴가를 얻어 아시아를 여행할 거라는 얀이 아니었다면 나에게 방콕은 꽤나 건조했을 거다. 그리고 얀이 카우치서핑을 통해 알게 된 친구(라고 나는 들었다;) 센은 태국 지하철에서 일한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제일 좋아한다는 모던한 태국 식당으로 우리를 초대했다. 자신이 좋아한다는 똠양꿍과 볶음요리를 세심하게 골라 권했던 그는 우리가 숙소로 돌아갈 수 있도록 끝까지 체크해줬다. 버스를 타기 전 편의점에 들려 감사의 표시로 레몬음료를 하나 사서 괜찮다는 그의 손에 억지로 쥐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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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orldofddanj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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