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여행기록 01

로드무비 2011. 1. 28. 15:14 |

1월 3일, 인천공항
공항은 언제나 나를 두근거리게 한다. 비현실적으로 크고 높은 건물들, 차갑게 반짝거리는 바닥, 지도 어디에 위치하는 지 알지 못하는 나라들과 비행코드. 그리고 이 풍경들이 너무나 익숙하고 당연하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사람들. 나는 그곳에서 더 작아진 것 같고 더 촌스러워지는 것 같다. 국가의 바운더리, 그래서 어느 나라도 아닌 곳 같은 공간에서 나는 비행기 타는 일이 익숙한 척 행동한다.
불안해 할 필요가 없다. 두 번째 떠나는 여행이고, 기간도 훨씬 짧다. 그런데도 마음이 더 복잡한 것은, 별다른 목적이나 고민도 없이 떠나는 여행에서 내가 어떤 생각의 결실을 맺을 수 있을까 하는 점이었다. 여행이란 새로운 시각이나 미각이 아니라 오래된 생각을 정리하는 일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눈과 입을 채우지만 마음이나 생각을 채우지 못할 까 봐, 그래서 속이 텅 빈 여행이 될 까봐 그게 두려웠다.


1월 4일, 방콕 카오산로드 근처
볶음밥이 이렇게 맛있을 수 있을까! 여행자는 가난한 것에도 행운을 읽어낸다. 이런 맛집을 내가 찾아내다니! 여기는 사람들이 잘 모를 보석 같은 골목이야! 괜찮다. 자신만의 리스트를 만들어 가는 것이 유명한 어딘가를 방문하는 것 보다 더 괜찮아 보인다. 나는 숙소 앞에서 처음 먹은 태국식 볶음밥에 감탄하고 이 집을 방콕 최고의 맛집으로 정해버렸다. 그리고 태국에 머무는 동안 매 끼 아침을 여기에서 먹었다. 뜨뜻한 공기와 자유로운 여행자의 분위기만으로 나는 대단히 너그러워졌다.


 1월 4일, 방콕 Wat Phra Kaew
론리플래닛에 나와있는 워킹 투어를 따라, 방콕의 유명한 사원들을 둘러봤다. 거대하고 화려한 사원들의 장식들에 놀라다가 곧 무감각해지기를 반복하고, 프레임에 절대로 잡히지 않을 이미지들을 상투적으로 찍어내다가 그만뒀다. 그러다 한쪽 구석에서 벽화를 복원하는 사람을 봤다. 교본도 없이 참고자료도 없이 붓을 덧칠하던 그를 보며 새삼스럽게 이 사원도 누군가의 노동 혹은 예술이었다는 걸 상기했다. 보았던 것은 건너뛰고 커다란 이미지만 기억하는 것은 게으른 구경꾼의 유명한 습성이지만, 여기에 남아있는 것은 사물이 아니라 사람의 역사이기도 했다. 개개인의 거대한 노력을 외면하는 것은 너무한 일이지만, 나는 사원이 점점 지루해져서,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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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orldofddanj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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