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라디오는 한밤중에 헤드폰이나 이어폰으로 혼자 들을 것을 권합니다. 괜찮다면 밤이 올 때까지 기다려주세요.
뭐 낮에 들어도 상관 없지만요 :)

할 일도 없으면서 인터넷을 끊지 못하고, 할 말도 없으면서 뭔가 써내려가려고 노력한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눈을 감고 음악을 듣는 것이 좋다. 페퍼톤스의 노래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1집 <Colorful Express>에 수록된 Fake Traveler 다. 싸이월드 음악평에 누군가가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나는 굉장히 생각이 많은 사람 같고, 남들은 생각 없이 그저 사는 것 처럼 느껴진다..."라고 표현했다. 공감한다. 한밤중에 헤드폰을 쓰고 노래를 듣는다. 나는 아주 사소한 존재이고 일상에 치이면서 겨우 할일을 해치우는 존재지만, 이 음악을 듣는 밤에는 온전히 세상의 주인공으로 어떤 삶을 살아 낼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질리지 않는 아름다운 곡이다. 


아래는 등심재평님의 홈레코딩 라이브 버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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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orldofddanj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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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에 다녀와서

로드무비 2010. 5. 8. 07:48 |

# 한 장소를 지속적으로 방문하다 보면 그곳에는 이야기가 생긴다.   2010.04.05 월 05:36


# 시험이 끝나고 어디로든 가볍게 여행을 가고 싶었다. 별다른 이유도 없이 전주를 택했다. 문장들이 참 좋은데 진도가 안 나가는 김연수의 <칠번국도>를 읽다가 차창에 머리를 박고 잠드니 어느새 전주에 도착해 있었다. 익숙한 터미널을 벗어나 영화의 거리로 들어서면서 새참국수, 한양소바 등의 익숙한 음식점들이 눈에 띄었다.
 봄이라고 하기에도 겨울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날씨가 삼월까지 이어졌다. 여행 분위기를 내겠다며 얇게 입은 웃옷의 자크를 끝까지 올렸다. 기술자막팀 사무실도 기웃거리고, CGV의 가파른 계단과 골목을 지키고 있는 벽화들도 챙겨 봤다. 영화의 거리를 한번 휘젓는 것으로 짧은 추억의 되새김은 끝났다. 왜 여기에 왜 온 걸까. 디지털독립영화관 전시를 보고 쉼터에 앉아 <원스>OST를 들으면서 나는 지금 무엇을 하는 걸까. 허기진 생각을 음식으로 채웠다. 삼백집의 콩나물국밥이 너무 반가워 먹기 전에 김을 찢어 넣는 것도 잊었고, 부른 배가 꺼질 새도 없이 꽈배기와 와플을 구겨 넣었다.
 마지막 코스는 오원집이었다. 영화제 첫날, 정신 없는 상영을 마치고 무전기와 검색노트를 낀 채 친구 J와 P를 만나 먹었던 고추장연탄돼지고기가 생각났다. 아주머니 여기 이 인분씩 시켜야 되요? 기본이 이 인분인데 혼자니까 일인 분도 해 주신단다. 소주도 한 병 시켰다. 술과 함께 먹어야 할 것 같은데 맥주는 도통 어울릴 것 같지 않아서. 분위기를 내 보겠다고 시켜놓고는 얕게 세 잔을 겨우 비우고 일어났다. 하루 종일 추위에 걸어서인지 금새 취기가 돌았다.
 전주영화제에서 일하는 동안 살았던 아파트에 들렀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돌아가던 길을 그대로 밟아, 아파트 앞 놀이터에서 놀이기구를 탔다. 스프링이 달린 목마 위에 앉아 두 손을 떼고 앞뒤로 흔들고 있으면 튀어나갈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여기에서 사람들과 앉아 영화제 이야기를 했었는데. 3월인데 입김이 났다. 금방 취했던 술기운이 또 금방 사라졌다. 십 분을 그렇게 저녁하늘 보며 놀이기구를 타다가 불쑥 일어나 돌아왔다.   2010.03.21 일


# 돌아오는 버스에서 작년 이 맘 때 만났던 사람이 생각났다. 사실, 만났다기보다는 만나기로 했던 사람이 정확한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많은 것이 일치하는 사람이었고, 만나자고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좋아하는 건지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는게 나의 심정이었다. 그리고 어리석게도 그런 말을 그녀 앞에서 고스란히 했던 것 같다. 사실은 나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좋은 것 같고 계속 지켜보고 싶어요. 괜찮다면요. 그때는 내 감정을 앞가림하느라 생각도 못했지만, 그런 말을 들어야 했던 그녀은 나를 얼마나 찌질하게 생각했을까.
 하지만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았던 십삼일의 금요일에 나는 다시 찌질한 말을 해야 했다. 이틀을 방에서 뒹굴며 고민한 말들을 엄청나게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미안해요. 아픈 질문이 돌아왔다. 그때는 왜 그랬어? 나도 잘 모르겠어요. 그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는게 아니라요 그 때는 그랬는데 그 뒤로는 왜 그렇게 안 되는지 잘 모르겠어요. 지하철을 기다리면서 자꾸 입구 쪽을 쳐다봤다. 그녀가 매섭게 쫓아와 나를 추궁할 것 같아서. 그럴 사람은 아니지만, 아니라면 다른 누군가라도 그럴 것 같았다.
 당시 나는 여러 가지 복잡한 일들에 흔들리고 있었고, 무엇보다 누군가와 관계를 쌓아가는 데 익숙하지 않았다. 나는 큰 감정의 소모에 당황했다. 누나는 연애도 노력하는 거라고 말해주었다. 그런데 좋아하는 감정들도 노력해야 하는 건가? 그럼 처음에 좋아하는 게 아니었나? 그렇게 누군가에게 고백하고 나면, 그때부터 연인의 호칭으로 가까워지고 서로 이것저것 챙겨주면서 사랑의 감정들을 표현하게 되는 것이 아주 이상하게 느껴졌다. 주변의 그런 만남들이 기괴하게 느껴졌다.
 
  누구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메커니즘을 잘 모르겠다.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내가 내린 결론은, 세상의 메커니즘이 나에게 해당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이정도 만나고 나서 고백을 하고 연인이 되니까 나도 지금 시점에서 이런 고백을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이게 좋아하는 걸까 사랑하는 걸까 침대에서 뒹굴 거리며 고민을 해야 했던 거다. 정말 좋아하면 고민할 필요도 없는 게 아니었을까.
 사실 나는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면서 그 사람이 천천히 좋아지는 사람인데도 나의 감정이 무르익기도 전에 세상의 메커니즘을 따라가려고 급급했었다. 적당한 시점의 고백, 적당한 시점의 연애. 돌이켜보면 그 사람에게 미안한 것은 찌질한 고백이나 용서가 아니라, 그 사이에 있었던 세상의 연인에 충실 하려고 '노력'했던 모습에 있다. 별로 진실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던 것 같다. 진심에 도달하기 전에 관계가 정해져 버렸기 때문에.

 그 일이 있고 며칠 뒤에 영화제에서 일을 할 것인지에 대한 면접을 보러 전주에 갔다. 산발적으로 흩어져있는 영화 언저리의 경력들을 넣은 한 장의 이력서를 앞에 두고 이런저런 질문을 받았다. 스크리닝 매니저로서의 각오를 묻는 질문에 야심 찬 답변까지 했던 걸로 기억한다. 사람에 대한 애정보다 영화에 대한 애정이 더 명확하니 아이러니했다. 이런 마음으로 누군가에게 좋아한다는 이력서를 보냈더라면, 비록 그 경력이 조금 산발적이고 찌질하다 하더라도 명확하게 답변할 수 있었을 텐데. 네, 좋아합니다. 잘 할 자신 있습니다.   2009.03.19 목


# 나는 언제나 - 잘 해야 하는 상황, 그러면 잘 되는 상황에 처했었다. 그러나 이 일은, 터질 수 밖에 없는 문제들을 최소화하려는 노력 - 내가 겪지 못했던 상황 같다. 걱정되고 무거워진다.   2009.04.02 목

 영화제 일이 쉽지는 않았다. 가볍게 시작했는데 나에게 주어진 일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아니 사실 처음에는 '이걸 왜 무겁게 생각하지?'라고 생각했다. 교육을 받고 필름을 검색하면서 점차 깨닫게 되었다. 영화를 틀면서 생길 수 있는 크고 작은 사고들을 '가볍지 않게' 받아들이고 준비하는 마음들이 있기에 영화제가 치러질 수 있는 거구나. 어떤 세계에서는, 삼 초간 흰 화면이 등장하는 것이 온 몸이 긴장될 이유가 될 수 있다.
 더불어 생소했던 것은 나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문제가 터질 수 있고 그것을 잘 대처해서 원래대로 복구하는 것이 이 일의 목표라는 점이었다. 문장으로 써 놓고 나면 질문을 가지기 어려운 명제이지만, 이런 자세를 몸으로 배우는 것은 또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나는 노력해서 더 좋은 상황을 만드는 환경에서 살아왔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문제를 잘 수습하는 것이 목표가 된다. 빼어나게 잘 한다는 개념이 없다. 문제가 없다면 그것으로 다행인, 이런 방식의 태도가 나에게는 아주 낯선 경험이었다.

 사람들과 부대끼며 피어났던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은 (일부는 벌써 잊기도 했고) 일일이 언급할 수 없다. 하지만 이따금 싸이월드의 사진을 뒤적거리거나, 영화제 카탈로그를 보는 것 만으로도 마음이 짠해진다. 2009년의 봄,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한 달간 먹고 자던 시간, CGV5관에서 트는 모든 영화가 안전할 수 있도록 책임져야 했던 그 시간들은 어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특별함이 있다.

 영화는 영화다. 하지만-   2009. 05.08. 금 (영화제 마지막 날, 마지막 영화였던 <영화는 영화다>상영을 마치고)


# 2년 전의 기억을 더듬어 걸어가니, 거기에는 정말로 2년 전에 잠을 청했던 찜질방이 그대로 있었다. 유스보이스 프로그램을 통해 친구들과 만들었던 단편을 전주영화제에서 상영했었다. 백퍼센트의 여자아이를 우연히 만난다면 그런 사람이란 누구일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벼운 생각이 담겨있던 영화였다. 스탭과 배우들보다 하루 먼저 도착했던 나는 찜질방에서 잠을 자기로 했다. 매트에 누워 막 잠이 들려는데 엄마가 전화를 했다. 아빠랑 누나랑 보러 갈까? 내일 아침에 내려가면 티켓 구해줄 수 있어? 우리 아들이 만든 영화 극장에서 트는 건데 보러 가야지. 하는 걸 한사코 말렸다. 엄마 쪽팔리게-
 상영이 끝난 뒤에 후회했다. 엄마 아빠 오시라고 할 걸. 영화는 작고 서툴렀지만 그걸 스크린에 튼다는 건, 관객들과 나눈다는 건 특별한 경험이었다. 영화제가 다 끝나고 나서야 그 의미를 알아차려 아쉬워했다. 부끄럽긴 무슨.   2008.05.04 일


# 그렇게 관객으로, 감독으로, 스크리닝 매니저로 역할을 바꾸어가며 전주를 방문했다. 이 년 만에 다시 그 찜질방에 누워 나는 자문했다. 그럼 올해는? 작년에 스탭으로 일해서 주어지는 게스트카드를 손에 넣기 위해 온 것인가. 사람들을 보려고 왔나. 그냥 '오기'로 온 것 같다. 나에게 의미 있는 영화제라서 그 의미를 확인하고 싶었나 보다. 이년 전의 기억, 일년전의 삶, 한달 전의 여행이 떠오르는 걸 보면 나에게 의미가 없다고 할 수는 없으리라. 그렇게 위로했다.

 내일은 친구 K가 대전에서 내려오기로 했다. 오늘 밤은 조금 쓸쓸했지만 내일은 친구와 영화제를 즐기리라. 뭘 먹으면서 전주를 소개시켜줄까? 삼백집 오원집 가맥 생과일주스 와플 꽈배기 새참국수 한양소바 전주비빔밥... 먹을 것만 헤아리다 잠이 들었다.
 찜질방에 놀러 오는 사람을 이해할 수가 없다. 나에게 찜질방이란 여행 중에, 특히 영화제를 목적으로 여행을 다니면서 숙소가 없을 때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답답한 공기가 싫고 청결한 것 같지도 않은 바닥에 똑같은 옷을 입고 널브러져 자는 사람들은 그로테스크한 느낌마저 든다. 일곱 시간은 잤는데도 근육은 굳고 몸은 더 피곤해 진 것 같다. 늦잠을 자고 "영화보다 낯선 단편 2"를 힘들게 봤다. 페레 포르타베야의 <무단자>와 잉거 리세 한센의 <시차>는 좋았지만, 롱테이크 다섯 개를 40분간 틀기만 한 <출구>는 참을 수 없었다. K와 만나 콩나물 국밥을 먹는 방법을 선배인 양 가르쳐 주고, 관객 라운지에서 까무룩 잠들며 인디밴드 '나비'의 공연을 봤다. 같이 스크리닝 매니저로 일했던 H형과도 잠깐 만났다.

 K와 힘겹게 영화를 보고, 잠시 카페에서 퍼져있다가 전일슈퍼에서 황태와 계란말이를 마약양념장에 찍어먹었다. 맥주를 먹으며 산디과 이야기를 하거나 옆을 지나가는 '나비' 맴버들을 보며 환호하기도 했다. 새삼스럽게 K가 고마웠다. 사실 이번 전주 방문은 완전히 실패였다. 나는 관객도 감독도 스탭도 아니면서 이 곳을 방문해서, 옛 추억이 겹쳐지는 것들만 보려고 했었다. K가 도착하기 전날, 작년에 함께 일했던 C누나와 그 때 좋아했던 가게에서 치킨을 먹기로 했다. 하지만 C누나의 선약으로 먼저 가시자, 나는 뭘 해야 할 지 몰랐다. 철저하게 혼자가 되어 익숙한 거리를 발견의 기쁨 없이 걸어 다니면서, 아 외롭구나, 생각을 했다. 나는 혼자인 것이 익숙하고 많은 시간들을 혼자서 즐겁게 보내는 사람이라고 습관처럼 말을 하지만, 누군가와 함께 맥주를 먹을 때에 비로소 지난 추억이 아닌 지금으로 즐거울 수 있는 사람이구나. 너 아니었음 오늘 나 정말 비참했겠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둘 다 정신 없이 잠을 잤다. 뒷머리는 정신 없이 헝클어졌다.   2010.05.05. 수


한 장소를 지속적으로 방문하다 보면 그곳에는 이야기가 생긴다.
하지만 이야기가 있는 곳을 지속적으로 방문한다고 해서 위안이 되는 건 아니다. 올 해 전주는 꽤 쌉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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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orldofddanj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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