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달리, 우리 시대의 청년들이 대면하고 있는 '삶/죽음'의 문제는 가령 90년대 초반 한국 사회가 체험한 거대서사의 종언과 같은 상징적이고 이념적인 성격의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생생하고 물질적이고 감각적이며 현실적인 '생존'의 문제에 더 가까운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은 취업과 보수와 재테크와 노후설계의 문제입니다. 대비하지 않으면 (대비한다 할지라도!) 비참한 미래가 펼쳐지리라 예상되는 이 불안한 시대에 하루키적 멜랑콜리 따위는 오히려 '사치'로 여겨질지도 모릅니다. 우울할 수 있는 '시간', 상실을 되새기며 여행할 수 있는 '시간', 실존적인 질문과 해답의 난맥에 빠져 영혼을 발효시킬 수 있는 '시간', 바로 그런 '시간'달을 박탈당한 채, 그들은 항상 쫓기는 상태, 추격당하는 상태에 놓여 있지 않습니까? 이런 점에서 이들에게 역시 서바이벌 키트는 '시간'입니다. 이들은 자신을 계발할 시간, 스펙을 쌓아야 할 시간, 노동을 해야 할 시간, 재충전을 해야 할 시간의 절박함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이 '시간'은 순수하게 물리적으로 환원된 두려운 시간입니다. 하루키의 시간에 미래가 없다면 이 시간은 미래밖에 없는 시간입니다. 또한 하루키의 시간이 진보의 환멸 속에서 웅성거리는 파편적 시간이라면, 이 시간은 (개인적) 능력의 신장에 대한 불안한 열망으로 결집된 시간입니다. 한마디로 규정하자면, 이 시간은 '시간을 주지 않는 시간'입니다. 시간의 부재가 그 본질인 시간입니다. 살아남은 자와 루저 모두에게 이 시간은 동일하게 자신의 법률을 적용합니다. 양자 모두에게 삶은 너무나 가혹한 결핍으로 나타납니다. 그것이 신자유주의의 폭력입니다.

* 살아남은 속물의 슬픔,『마음의 사회학』의 저자, 김홍중에게 묻다, 1/n, issue 2 : survival kit, 2010 Sp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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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orldofddanj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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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zik, 4minute


 유튜브질이라는 것이, 어느새 정신차려보면 난데없는 걸 즐기고 있지 않는가. '작살라이브'를 찾아 돌아다니기도 하고, 영화 예고편과 비하인드신을 팬심으로 찾다보면 시간은 정말 훌쩍 지나간다. 어쩌다가 다시 듣게(혹은 보게) 된 건진 잘 모르겠지만, 4minute의 "Muzik"을 다시 듣게 되었다. 아니 이런 근사한 사운드가! 4분 즈음에 클라이막스로 쌓아가던 비트들이 갑자기 다 제거되고 'Dancing muzik~' 하는 부분에선 우와... (이런 것에 약하다)




Mystery, Beast


 어제는 또 뒤늦게 가요들을 듣다가 beast의 "Mystery"를 알게 되었다. 특이한 댄스를 <세바퀴>에서 본 게 전부였는데 아니 이 노래도 참 근사하구만! 음악적인 건 하나도 모르지만, 테마를 반복하면서도 지루하지 않게 변주되는 두 곡이 참 매력적인 것 같다. 찾아보니 두 곡 다 신사동호랭이가 작곡한 것 같은데, 곡이 매끈한게 마음에 든다. 기계로 매만진 곡들이라 라이브보다는 MV가 음악을 즐기기엔 더 좋은데, "Mystery"는 MV가 없는 것 같다.
 네이버 오늘의 뮤직의 한 평론가는 4minute의 앨범에 "상향평준화란 말은 최근의 걸 그룹들에게 적합" 이라는 평을 남겼는데 정말 그렇다. 걸그룹과 남자아이돌 그룹이 넘쳐나면서 점점 지루해지는가 싶었는데, 그들의 음악이 점점 트렌디해지고, 진화하는 걸 지켜보는(듣는) 게 재미있다.




다시 만난 세계, 소녀시대


 그러다가 다시, 얼마전에 삼십분을 반복 재생하며 봤던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가 떠올랐다. (라이브 참 잘하네!) 기계로 매만진 일렉트로닉 보이스에 기대지 않고 정직하게 부르는 이들의 모습이 기묘해서, 십년도 더 된 비디오를 보는 것 같은 느낌까지 든다. 얘들도 짐작이나 했을까? 몇년 뒤에는 기계로 목소리를 절단해 "G G G G be be be be be" 노래를 부르게 될 줄. 켄지와 SM으로 대표되는 90년대 우리 정서의 아이돌 노래들은, 이 노래를 마지막으로 사라진 것이 아닐까. (이제는 SM이 제일 이해하기 어려운, 학습해야 하는 노래들을 쏟아내는 것만 같다.) 문득 이 정직한 90년대 아이돌의 멜로디가 그리워진다. 지금의 아이돌들이 들려주는 최신의 완성도 있는 음악도 물론 좋다.
 

그러니까 사실 이 포스팅은 대중가요의 매력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자기고백의 라디오. 방학한 자의 잉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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