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생일로부터 도망을 다닌다.

 생일 축하를 받는 일은 민망하고 어색하다. 특별한 이벤트를 기대할 나이는 이미 지났다. 하지만 '생일이지만 별다른 기대가 없는 것'이 얼굴에 드러나는 것으로 오히려 '내가 생일임'을 여기저기 알리고 다니는 것만 같아 찜찜하다. 사람들을 만나는 게 축하를 강요하는 것 같아 방에 틀어박혀 있게 된다. 전화도 멀리한다. 싸이월드를 통해, 천년바위 프로필을 통해 알려지는 생일은 '이 사람에게 축하를 해야 할 시기가 왔으니 친분을 생각한다면 연락하라'고 강요하는 것만 같다. 그게 마치 내가 강요하는 것만 같아 민망하다.

 아빠가 대전에 내려오셔서 같이 저녁식사를 했다. 수입산 소고기를 구워먹으며 아빠는 집 이야기를 나는 학교 이야기를 했다. 어색하게 케이크 놓고 축하하며 분위기를 내지 않아도 되는, 한끼 밥을 먹는 일상적인 행위로 아빠의 축하와 격려가 와 닿아서 마음이 따뜻했다. 케이크 사 줄 테니 친구들 불러서 파티라도 하라는 걸 민망함에 '에이 뭘 그런 걸!'하고 한사코 거절했다. 삼 인분의 고기를 먹고 조금 쌀쌀해지는 5월의 저녁에 아빠와 가게 앞 나무테이블에 앉아 쉬었다. 모처럼 하늘을 본다. 아빠는 서울에서부터 밥 먹고 씹을 껌을 휴지에 싸 오셨다.

 핸드폰을 가방에 넣어두고 잤다. P의 전화에 깨서 생일축하를 시작으로 요즘의 과제들과 살아가는 이야기를 했다. 오래간만에 P의 목소리를 들으니 반가웠다. 이런 전화를 받을 수 있다면, 민망하고 어색하지만 매일이 생일이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를 끊고 핸드폰을 확인하니 많은 친구들의 문자와 전화가 와 있었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상하게 삐뚤어진 생각의 회로를 발동시켜, 사람들의 호의로부터 도망다니고 있었다. 설사 그것이 가벼운 마음이라고 하더라도 그 마음을 똑바로 바라보는 걸 피해서는 안 된다.

나는 축하의 어색함이 필요 없는 가족이나, 내가 받고 싶었던 연락만 기쁘게 받았다. 아주 이기적이다. 캐주얼한 마음을 캐주얼하게 받으면 되는데... 하지만 민망하고 어색한 건 어쩔 수 없다. 나는 오늘 얼굴 마주보면서 하루 늦은 축하를 민망하게 받을 것이고(표정관리!) 내년에도 생일로부터 도망 다닐거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축하받아야 하는 날이 일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게 자꾸 신경쓰이게 된다. 달력을 흘끗흘끗 눈치보면서 생일을 맞이한다.



ps. 댓글로 생일축하,를 적지 않으셔도 되요. 진짜에요. 계속 그 이야기를 쓰고 있잖아요. 내 마음 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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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orldofddanj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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