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면하지 못한 채

265,000 2011. 10. 19. 04:57 |
대면 2010/04/20 05:33
http://myboyhood.tistory.com/98

<무한도전> 복싱특집을 봤다. 고통스럽게 봤고 두 선수의 신념이 겨뤄지는 경기에선 눈물이 났다. 국적이나 승패와 상관없이 링 위에 오른 두 사람을 모두 응원하게 되는 이 기이한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나는 김연아를 떠올렸다. 금메달을 따는 순간이 아니라 자신의 연기를 마친 뒤에 눈물을 흘렸고, 모든 압박감이 떨어져 나가는 것만 같았다는 인터뷰를 보면서 그 동안은 그런 가보다 했던 정신력이라던가 부담감이라던가 하는 말들이 확 와 닿았다. 아마도 나는 수 많은 시간동안 치열하게 갈고 닦은 삶을 가지고 삼분 남짓한 승부에 오르는 순간에 매혹됐던 것 같다.

이따금 울컥하고 치솟는 나에 대한 끝없는 소외는 대면의 순간을 피해가는 내 삶의 태도 때문이다. 수능을 피했고 고백을 피했고 군대를 피했다. 사실은 용기가 없으면서 진짜 나의 삶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핑계를 대고 계속 현실의 테두리에서 서성였다. 나는 나와 대면하기를 피하는 대가로 매 달 십삼만오천원을 받는다. 샤워를 하면서 나의 이십대는 대면의 순간을 피해 도망치던 시간이었구나 라는 것을 깨달았다. Y형은 “너는 네 취미가 너를 충분히 먹여 살려주기 전까지는 힘겨운 엑스트라 밥벌이를 병행해야 되고 그 프로포션을 맞춰나가는 과정이 네 태도에 달려있겠지.”라고 했다. 아마 그게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적인 노력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대면의 순간을 나중으로 나중으로 유예하는 데서 오는 자책감을 떨치지 못할 것이다. 

나도 수 많은 시간 치열하게 고민하고 싸워 삶의 무대에서 내가 응당 견뎌내야 하는 것들과 대면하고 싶다. 이기든 지든 상관없는 그 순간을 겪고 싶다. 하지만 나는 그냥 살아간다. 삶은 몇 분의 순간과 그 뒤의 감흥으로 끝나는 스포츠가 아니라 길게 이어지는 잔혹한 뒷골목에 가깝다. 나는 이런 세속적인 핑계를 대면서 계속 대면의 순간을 피하고, 그런 나를 소외하고, 그러다가도 쌉쌀하게 살아간다. 사실 무엇과 대면해야 하는지 무엇을 치열하게 싸우고 싶은지도 잘 모르겠다. 그래서 4.19 앞에서 부끄러워지고 김예슬씨의 선언에 고개를 숙일 뿐이다.



* 1년이 지났고 나는 이제 석사생이 되어 매 달 이십육만오천원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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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orldofddanj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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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방학동안 혼자 이것저것 새로운 시도와 작업들을 했었는데, 그 중에 가장 오랜시간 할애했던 것은 <졸업작품 익어가는 시간>을 만드는 것이었다. (관련 페이지 : http://world-of-ddanjit.tistory.com/3 ) 느슨한 영상들을 매일 1분 내외의 단편으로 엮어 웹으로 공유한다는 프로젝트는 70일동안 이어졌다. 3개월 가량의 여름 방학동안 매일 한시간에서 두시간 정도를 일정한 작업에 규칙적으로 투입한다는 것은 나에게도 생산적이고 유익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힘들었지만 지독하게 재미있었던, 그립지만 다시 올까봐 기겁하고 도망칠 순간들에 대해 마지막으로 인사를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이 프로젝트는 매일 하나씩 영상을 올리는지라, 블로그를 도배할 수 없어 프로젝트 홈페이지에만 작업을 올렸다. 이제 모든 작업들이 끝나 블로그에 포스팅할 수 있게 되어서 기분이 좋다. vimeo에 개설된 공식채널과, tumblr에 개설된 아카이브를 통해 그 영상들을 볼 수 있다. (저는 개인적으로 개별 영상은 vimeo 공식채널을, 프로젝트에 대한 경험은 tumblr 아카이브 방문을 권합니다.)


Vimeo 공식채널 (하단의 이미지 클릭 혹은 http://vimeo.com/channels/graduationdocumentary 으로)





T
umblr 아카이브 (하단의 이미지 클릭 혹은 http://graduationdocumentary.tumblr.com 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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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orldofddanj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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