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로제도 구경 4

로드무비 2010. 1. 18. 09:59 |

 



 Faroe Island의 마지막 여행지는 북쪽의 Viðareiði(Vee-ar-oy-ye라고 읽으라던데..)라는 작은 마을이었다. Klasvík까지 한 시간 반을 버스로 이동했다가 작은 버스로 갈아타서 다시 사십 분을 들어가야 하는, 버스로 갈 수 있는 가장 북쪽의 마을이었다. Klasvík에서 학교를 마친 십대들이 버스에 타더니 원래 버스 노선표에는 없는 작은 마을에서 하나 둘씩 내렸다. Hvannasund라는 아주 아름다운 마을에서 남은 아이들이 모두 내렸는데, 잔잔한 바닷가를 마주보고 서 있는 굽이치는 산, 집집마다 작은 마당에 그네하며 자전거 같은 손으로 직접 만든 놀이기구들이 있는 그런 소박한 매력이 마음을 끄는 곳이었다. 이 아이들이 이 자연 속에서 어떤 것들을 느끼며 십대를 보낼까? 부럽기도 했고 신기하기도 했다. 


 론리 플래닛의 설명에 의하면 완만한 U자 계곡이 마치 신이 스케이트 보드를 타는 곳 같다고 하는데 딱 그런 느낌의 평화로운 곳이었다. 양쪽에서 완만한 산등성이 마을을 포근하게 감싸주었고, 구름이 지나가면 순간 그림자가 지며 살짝 비가 내리다가도 그 구름이 저만치 물러나면 (혹은 내가 이만치 걸어 구름을 벗어나면) 다시 기분 좋은 햇살을 느낄 수 있었다. 하이킹을 하기에는 완벽한 곳이었다.
 







 마을의 오래된 교회를 둘러보고 돌아 나오는데 뒤에서 갑자기 개 한 마리가 나타났다. 안녕 하고 인사하려는데 그 개, 왼쪽 뒷다리가 없다. 나중에 마을 사람에게 물어보니 자동차 사고로 다리를 잃었다고 했다. 온순하고 사람을 잘 따라서, 내가 동네와 산을 하이킹 하는 내내 같이 돌아다녔다. 풀밭에 널려있는 양떼를 볼 때마다 겁을 줘서 도망가게 만들다가도 양이 반격하면 무서워서 내 뒤로 숨어버리는 녀석이었다. 섬나라답게 가랑비가 오다가도 햇살이 강하게 내리쬐는 마을의 산등성을 그 녀석을 친구 삼아 이야기하면서 걸었다. 길가에 앉아 바게트를 나눠먹으며 때로는 한국말로 때로는 영어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녀석은 바게트의 딱딱한 껍질은 먹지 않아서 그 부분은 고스란히 내 것이 되었다.




 두 시간 가량 하이킹을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를 기다리면서 짧은 인연을 생각했다. 내가 이 섬에 다시 오게 될까? Viðareiði에 다시 와서 그 귀여운 녀석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아마도 그러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정말 멀리에서, 우연히, 짧게, 만났다가 스쳐 지나간다. 페로제도를 여행하면서 느꼈던 공허한 마음들은 어쩌면 정말 짧은 순간에 만났으나 그저 배낭을 메고 고개를 빼서 ‘구경하는’ 정도가 우리에게 허락된 인연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허무하다거나 슬프다는 건 아니다. 내가 돌아가면 만나게 될 오랜 인연의 사람들과, 잠시 스쳐 지나가는 인연들과, 서로의 존재를 막연히 짐작만 하고 평생 만나지 못할 것들을 생각하면서 우리의 삶이 얼마나 조그만지 생각했을 뿐이다.

타다닥 타다닥 세 발로 열심히 걷다가 내가 얼마나 왔나 뒤돌아보던 그 녀석의 발소리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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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orldofddanj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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