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로제도 구경 2

로드무비 2010. 1. 16. 13:15 |



 아침에 버스 정류장으로 돌아가 4일짜리 버스와 패리 패스를 400DKK(덴마크화폐, 약 260배 곱해주면 원화라고 할 수 있다) 에 구입했다. 돌이켜보면 페로제도를 여행하는 방식은 참 독특했다.  수도인 Tórshavn에 4일 내내 머무르기로 하면서 매일 새로운 숙소를 찾을 필요가 없었고, 아침마다 정류장으로 가서 버스를 잡아타고 구경을 갔다가 돌아왔다. 베이스캠프를 세우고 섬 하나하나 마을 하나하나를 구경한다고 해야 할까? 그런 느낌이었다.





 보트투어를 할 수 있다는 Vestmanna에 도착한 시간은 11시 25분, 바닷가를 마주보고 세워진 동네를 조금 헤매다가 투어오피스를 찾았다. 투어는 오후에 있었는데 (정확한 시간을 까먹었다. 두 시 혹은 세시였던 것 같은데…) 날씨가 좋지 않아 취소될 수도 있다고 했다. 이름을 올려놓고 남은 시간 마을 뒤편의 산을 트래킹 하기로 했다. 큰 개와 함께 아빠의 농사일을 돕는 아이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산길을 따라 걸었다. 마을과는 점점 멀어지고, 다양한 빛깔의 녹음과 푸른 바다, 바람이 이국적인 섬나라를 고향처럼 느끼게 해주었다. 격정적인 것은 하나도 없다. 그래도 아름답구나, 말이 절로 나온다.




 다행히 보트투어가 취소되지 않았다. 버스에 오르니 독일에서 왔다는 노부부와 (아마도 덴마크 출신의) 여행객 둘이 타고 있다. 독일 할아버지는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여행을 왔는지 궁금해 했고, 서로가 가진 필름카메라를 보며 사진에 대한 이야기도 잠시나마 나눴다. 출렁이는 보트를 타고, 그림 같은 마을에서 멀어져 바다로 나갔다. 원래 Puffin을 비롯 새들을 많이 볼 수 있다는데 시즌이 아니었고 거친 파도를 타고 울렁거리는 배는 우리들을 자주 긴장시켰다. 그 규모와 경사가 압도적인데도, 페로제도의 해안절벽이 ‘무섭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던 것은, 언덕과 절벽을 뒤덮은 풀들이 보여주는 무겁지 않은 녹색과 페로제도에서 느꼈던 고유한 차분함 때문이었던 것 같다.




 절벽에는 어떻게 저기까지 갔을까, 아니 그보다도 지금 저기에서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걸어 다니며 풀을 뜯는 걸까, 싶은 양들이 있었다. 이런 아찔하게 평화로운 양들은 아이슬란드에서도 종종 봤고 볼 때마다 의아했는데, 투어를 하면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이들도 양들이 어떻게 저기까지 갈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그래서 정기적으로 보트를 끌고 와서 암벽을 타 양들을 데려간다고 한다. 밤이면 수직으로 꺾인 절벽을 스파이더맨처럼 타고 이동해 천연덕스럽게 사람들을 속이며 풀을 뜯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해 봤다.




 숙소로 돌아가는 일은 끔찍했다. 히치하이킹은 한번도 성공하지 않았고, 두 시간이 넘게 밖에서 기다려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비까지 내리자 마음은 더없이 쓸쓸해진다. 마을 입구 주유소 편의점에서 눈치를 보며 시간을 보내다가 얼어붙은 몸을 버스에 실었다. 숙소 앞 펍에서 술 취한 히피들이 장난을 쳤지만 같이 웃으며 넘겨 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이럴 때면 항상 같은 생각을 하게된다. "왜 이 먼 곳까지 온 거야?" 나쁜 기억 하나로 즐거웠던 하루가 우울해 지기도 한다. 그냥 어서 잠자리에 들어 내일을 기약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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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orldofddanj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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