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년 8월 26일+27일. 아이슬란드 일곱째, 여덟째 날


 오늘은 Akureyri부터 아이슬란드 수도인 Reykjavík으로 이동하기로 한다. 28일 오후에 페로제도로 이동하는 비행기표가 예약되어 있어 적어도 그 날 오전까지는 수도로 들어가야 했고, 아이슬란드의 또 다른 절경이라는 West지역으로 가려면 이동시간을 고려했을 때 빽빽한 일정이라 위험부담이 있었다. (나는 결국 Westfjords, WsetIceland, EastIceland, Interior지역을 가 보지 못했다. 다음에 아이슬란드를 방문한다면, West지역의 아찔한 해안 피요르드와, East의 Seyðisfjörður의 midnight kayaking trip, Interior의 빙하지역을 꼭 가보려고 한다.) 아침 8시 반에 출발한 버스는 작은 마을에 들리기도 하고, 승객을 위해 식당에서 잠시 멈추기도 하면서 여섯 시간을 달렸다. 이제는 너무 익숙해져 감흥이 오지 않는 아이슬란드의 깨끗한 들판과 산을 보며 사람이 이렇게 무뎌지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답지만 피로에 눈을 감게 된다.
 아이슬란드의 구름은 낮게 깔린다. 지대가 높나? 0℃가 만들어지는 지점이 낮아서 그런가? 얕은 지식으로 머리를 굴려본다. 고등학교에서 지구과학시간에 배웠던 여러 가지 – 구름이 만들어지고 비가 내리는 과정들과 그것들을 묘사한 단면도 – 가 떠올랐다. 지구과학을 재미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물리나 화학처럼 다른 과학과목에 비해 상대적으로 마이너한 과목이라는 점과 (왜 나는 그런 것들에 끌리는 걸까?)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살면서 몸으로 배워서 알고 있는, 이유가 필요 없는 사실들을 바탕으로 거대한 흐름을 이해해서 설명할 수 있다는 건 멋졌다. 상대적으로, 화학은 그 실체를 모르는 채 사람들이 만들어낸 기호들로 말을 맞춰가는 것 같아 부담스러웠다. 좀 더 진득하게 공부했다면 그것들의 이치도 깨달을 수 있었겠지만, 그다지 영특한 편은 아니었던 나에겐 그런 느낌으로 다가왔었다.


 정확히 일주일 전 Keflavík에서 떨리는 마음으로 도착했던 BSI버스터미널이 괜스레 반가웠다. ‘일주일 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지, 나는 또 이만큼 여행자의 모습을 갖춰가고 있어.’ 라면서. 시내로 들어가기까지 버스를 타거나 택시를 이용하기에는 돈이 아까워 배낭을 메고 도심으로 들어간다. 천천히 걸어 30분 정도면 도심으로 들어갈 수 있는데, 인포메이션 센터를 찾는데 조금 애를 먹었다. 어제 Akureyri에서 숙소 예약을 할 때는, Reykjavík에 도착하면 바로 버스를 타고 Vestmannaejar에 갈 계획이어서 27일 유스호스텔만 예약을 해 두었다. 그런데 버스를 타고 Reykjavík으로 가면서, 예상보다 너무 많은 지출이 있었던 아이슬란드 여행에 대한 부담이 느껴졌고, 또 Vestmannaejar에서 기대했던 Puffin tour 역시 성수기가 끝나가는 마지막 주여서 생각만큼 볼 수 없을 거라는 사람들의 말이 마음에 걸렸다. 계획을 수정해서 Reykjavík에 계속 머물기로 했다.
 왜일까 아이슬란드에서는 도시보다 시골의 자연이 보고 싶어서인지 수도인 Reykjavík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열정적인 nightlife로 유명하다는 아이슬란드의 그 마을이 궁금하기도 했다. 물론 내가 펍이나 클럽에 가지는 않겠지만, 이런 조용하고 아름다운 세상에 사는 젊은이들은 어떤 갑갑함을 느낄까? 그리고 그걸 어떻게 표출할까? 그런 것들은 궁금했다.
 Reykjavík의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연결해준 숙소는, 4500ISK의 가격에 비해 넓은 방에 커튼으로 칸막이가 되어있는, ‘시설이 좋다’고 말할 수는 없는 곳이었다. 성수기 마지막 날 수도 한 복판에 쉴 곳이 있다는데 감사해야 함을 알고 있다. 주방도 있지 않은가! Akureyri의 외로워 보였던 여자아이에게서 샀던 스파게티믹스를 저녁으로 먹으려 주방으로 갔다.

 “혹시 한국 분이세요?”
귀를 꿰뚫는 한국어에 깜짝 놀랐다.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한국 분을 만난 것이다. 생각해보니 아이슬란드에 도착해서 한국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집중해서 이해하려 노력할 필요 없이 자연스럽게 음성이 의미로 풀이되는 순간을 오래간만에 경험하니 뭔가, 신기했다.
 그 형은 군대를 마치고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유럽을 여행해 이곳에 왔다고 했다. 사실 그에게는 ‘그린란드’가 여행의 목적이자 로망이고 그린란드에 가기 위해 아이슬란드에 온 것이다. 모험가를 만난 것처럼 신기했다. 겉을 훑고 오는 것이 싫어 선박을 통해 여행할 거라며 복잡한 선박탑승에 대한 프린트를 보여주셨다. 세상은 딱 자신이 하고 싶은 스케일만큼 커진다.



 지금 Reykjavík에서 열리고 있는 재즈페스티벌에 가려고 한다니 자신도 오늘 계획이 없다고 함께 가자고 하신다. 매월 여름에 열리는 재즈페스티벌은 도시의 여러 bar에서 시간대별로 다양한 팀이 재즈공연을 하고 있었는데, 인포메이션에서 알려준 것과는 달리 입장료 1500ISK를 지불해야 했다. 하지만 한번 도장을 손등에 받으면 day pass. 나야 재즈는 잘 모르지만 자유로운 분위기, 악기들의 변주, 편안함이 좋았다. 예상치 않았던 입장료 지출에 부담스러워 하셔서 내가 맥주 2잔을 샀다. 자리는 이미 꽉 차 있어 bar 바닥에 앉아 재즈를 들었다. 맴버 소개와 다음에 연주할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제외하곤 음악이 끊임없이 흘러나왔고, 관객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재즈를 즐겼다. 
 한 시간 정도의 공연이 끝나고 옆의 bar로 이동해 다른 팀의 공연을 보았다. 이들은 프로패셔널한 직업 음악인이 아니라 취미로 시작한 밴드라고 하는데, 금관악기의 강렬한 소리와 부드러운 피아노, 베이스가 함께 있는 재즈였다. 맥주와 재즈와 오래간만에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대화가 즐거웠다.



 다음날 아침에는 일주일 치 빨래를 하고, 나는 예약해두었던 Reykjavík Youth Hostel로 숙소를 옮겼다. 형은 투어를 하실 거라고 해서 저녁때 다시 만나기로 했다. 론리플래닛에도 나와있듯이, Reykjavík의 유스호스텔은 시내 중심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알고 보니 Reykjavík 시내에 새로운 유스호스텔이 생겼나 보다. 론리플래닛에만 의존하다 보니 도심에 있는 이 숙소를 몰랐다.) 짐을 메고 다니기엔 부담스러워 Day Pass를 구입해 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Day Pass는 600ISK인데, 나처럼 짐을 놓고, 나와서 시내를 구경하고, 다시 숙소로 들어갈 사람 혹은 3번 이상 버스를 이용할 사람에게는 저렴했다. 이 버스패스는 또 잘 정비된 디자인, 품질 좋은 인쇄로 기분을 좋게 했다. 전공이 그런지라 이런 요소들이 눈에 먼저 들어왔고 여행 중에는 디자인이 잘 되어있는 유럽이 부러웠다. 
 유스호스텔은 과연 론리플래닛이 꼽은 숙소라고 할 만 했다. 깨끗하고 자연친화적인 공간, 친절한 스탭, 청결하고 보안이 잘 되어있는 숙소, 무료 Wi-fi와 휴게공간… 이후에 방문했던 어떤 유스호스텔보다 훌륭했다. 어제 저녁에 먹고 남은 스파게티 믹스로 점심을 해결하고 다시 시내로 향했다. Reykjavík에는 많은 겔러리와 뮤지엄이 있어서 이를 둘러보기로 했다.





 어떻게 발음해야 할지 감조차 잡을 수 없는 Aðalbókasafn(도서관, Reykjavík Museum of Photography도 이 건물에 있다) 이나 Hafnarhúsið(Reykjavík Art Museum), National Museum of Iceland 같은 곳들을 방문했다. 흥미로웠던 것들도 있고, 당시에는 인상적이었지만 금새 잊혀진 곳들도 있었다. 나는 지금 이 곳들에 대해 나열하려는 건 아니다. 아마 인터넷 공식 홈페이지나 아이슬란드에 관한 책자들이 더 자세하게 소개해 줄 것이다. 하지만 4개월간 유럽을 여행하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Reykjavík 871±2”라는 독특한 이름의 박물관에 대해서는 꼭 이야기하고 싶다.


 2001년 발굴된 이 곳은, ‘AD 871±2’년 경(추측연도)에 Reykjavík에 거주했던 바이킹들의 집터이다. 암사동 선사유적지를 떠올리면 편하겠다. 이름 붙인 센스부터, 단 하나의 터를 가지고 만들어 낸 이 박물관의 Storytelling과 전시방식에 정말로 감동 받았다.
나선형 계단 혹은 원형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어두운 리셉션이 나온다. 입장하면 바이킹시대의 집 터를 바라보게 되어있고, 중앙에 불을 지피던 곳은 투명유리에 불 영상을 투영시켜 놓았다. 집 터를 따라 타원형의 길을 따라 걸어가면서 그 시대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는 살펴볼 수 있다. 파노라마형식으로 둘러져 있는 사진 사이사이에 스크린이 있고, 센서로 사람을 인식해 스크린 앞에 섰을 때 사람들의 실루엣이 당시의 생활형태를 재현해 보여준다. 마치 사진에서 사람들이 움직이듯, 스크린과 사진의 경계가 없고 간결하게 묘사된 영상이미지는 굳이 길고 지루한 텍스트를 읽지 않아도 그 시대의 삶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가장 압권인 부분은 ‘멀티미디어’ 시설이다. 871±2년 당시의 집의 외관부터, 지붕을 제거하고, 벽을 제거하고… 그래서 현재 남아있는 터까지의 모습을 3D로 렌더링 해 두었다. 물론 이런 방식으로 원형에 대한 이미지를 제공하는 박물관은 많다. 헌데 이 곳에서는 사용자가 독특한 터치스크린을 통해 360°돌려보고 더 작은 원형을 그리면 한 꺼풀 벗겨진 집의 모습을 다시 360°로 돌려볼 수 있다. (텍스트로 표현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점이 안타까울 지경이다.) 점차 지금 남아있는 집 터의 모습으로 변해가는 영상을 보면서 그냥 오래된 돌 무더기였던 집 터가 원래 어떤 형태였는지 기억할 수 있게 된다.
 집터 옆으로는 그것과 동일한 모양의 테이블이 놓여있고, 위에서 집터의 모습을 프로젝션 하고 동시에 사용자의 터치를 인식해 반응한다. 사용자가 테이블 상의 집 터 한 곳을 터치하면, 그 곳에서 발굴된 유적 이미지, 그 장소에 대한 설명, 바이킹들이 그 공간에서 어떻게 지냈는지에 대한 영상정보가 디스플레이 된다. 아이들은 재미있다는 듯이 테이블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나는 내 옆에 놓인 실제 유적과 테이블의 설명을 번갈아 보며 ‘고고학자가 되고 싶어하는’ 아이가 된 느낌이었다.





 그 어떤 디자인숍보다도 세련된 제품들을 판매하는 기념품점을 둘러보고 나오면서, 그제서야 입장료로 600ISK나 받기에는 유적 자체나 박물관의 규모는 작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단 하나의 유적을 그저 ‘박물’된 ‘옛 것’으로 ‘전시’하는 게 아니라 체험하고 이해할 수 있게 해 놓은 그들의 이야기 방식이 정말 매력적이었다. 누군가 아이슬란드에 가게 된다면 “Reykjavík 871±2”에 꼭 들려보라고 권하고 싶다.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박물관은 이런 형태여야 한다.





 Reykjavík의 유명한 건축물로는 Hallgrímskirkja 교회가 있다. 수도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한적하고 조용한 공원과 마을길을 지나 성당으로 갔는데, 공사 중이어서 특유의 절제되면서도 웅장한 모습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아 아쉬웠다. 이게 루터교의 양식인지까지는 모르겠지만 아이슬란드의 교회들은 무채색의 장식이 배제된 형식이 많았다. (대부분의 국민이 루터교를 믿는다고 한다.) 하얗고 길게 뻗은 교회의 내부에서 나는 엉뚱하게도 ‘슈렉’을 연상시켰다. 피오나 공주가 파콰드 영주와 결혼식이 이루어졌던 성당이 이런 스타일이지 않았나? 엄숙한 교회에서 이런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400ISK를 내고 건물의 전망대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는데 공사 중이라 철근들이 시야를 가리고 있어 아쉬웠다. ‘이럴 거면 요금을 받지 말아야 되는 거 아니야?’ 여행자의 심보는 그렇다. 물론 따지지는 않는다.





 저녁에는 형과 다시 만나 저녁을 먹고, 재즈페스티벌이 열리는 Bar로 다시 갔다. 어제 형이 손등의 도장이 지워지지 않게 조심했다가 또 가자고 했는데, ‘아 (한국인으로서, 여행자로서) 이러면 안 되는데..’ 하는 마음과 ‘돈이 없(는데 즐기고는 싶)다’는 마음 사이에 고민하다 보니 어느새 Bar 앞이었다. 형은 곧 떠날 그린란드 여행에 들떠 있었다. 여행지에서 자신에게 주는 선물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형은 그린란드에서는 일각고래의 뿔에 조각을 해서 판다며 그걸 꼭 가지고 싶다고 했다. 적당히 오른 취기에 내일을 위해 일찍 헤어지면서, 이름도 연락처도 물어보지 못했다. 아니, 그것보다도 그린란드 여행 잘 하시라고 응원의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사람들과 헤어질 때 제대로 감정이나 생각을 표현하지 못할 때가 많다. 전하고 싶은 고마움이나 아쉬움은 있는데 그게 어설프게 표현되어 상대에게 전해지지 못하곤 한다. 그 뒤로 한동안 종종 그 형을 생각했다. 지금쯤 그린란드의 배에 오르셨을까? 일각고래의 뿔 조각을 구입하셨을까? 그가 꿈꿨던 로망이 실현되는 순간에 어떤 감흥이었을지 상상하면서, 형의 여행이 안전하기를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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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orldofddanj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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