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로제도 구경 1

로드무비 2010. 1. 11. 12:42 |

 


 아이슬란드 Reykjavík의 버스터미널에서 Keflavík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타, 나는 페로제도라는 또 다른 여행지를 꿈꿨다. 그런데 운전기사가 나의 꿈을 방해한다.
“어디 가? 페로제도? 그 비행기 Keflavík 공항에서 출발 안 하는데?”
 오 마이 갓. 공항체크도 철저하게 하지 못하는 초보 여행자 티를 내다니. 페로제도로 가는 내 비행기는 Reykjavík Domestic Airport에서 출발한다고 프린트에 인쇄되어 있는데, Reykjavík에 공항이 있지 않다고 ‘믿었던’ 내 의식이 ‘제대로 보는 걸’ 방해했나 보다. 덜컥 겁이 나 팔자에도 없는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갔다. 백원천원 올라가는 돈에 진땀이 나 택시 창문에 새겨진 한국 자동차 마크와 한글도 눈에 들어오지 않을 지경이었다.


 페로제도를 아는 사람을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그럴 만 하다. 페로제도는 나라가 아니다. 아이슬란드와 영국 사이에 희미하게 있는 몇 개의 섬들로, 덴마크령이라고 한다. 하지만 지역적으로 격리되어 있고 독자적인 문화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덴마크에 가 보지 못했지만, 자연에 영향 받은 풍경은 아이슬란드와 흡사했다. 나라 이름도 다 외우질 못하는데 그 나라의 어떤 섬에 대해 아는 사람이 많을 리가 없다. 그리고 사실 많은 사람들의 머리 속 지도에는 영국(이라고 쓰고 런던이라고 이해한다) 위로 아무 것도 없는 것 같다. 아이슬란드 여행을 준비하느라 론리플래닛 아이슬란드편을 뒤적거리다 발견한 페로제도는 그래서 나에게 흥미를 끌었다. 이 곳은 어떤 곳일까? 간단하게 인터넷을 검색해 찾은 풍경들도 좋아 보였다. 그래, 고백해야겠다. 나는 사실 뭔가 사람들이 가지 않은 특이한 곳에 가서 그걸 은근하게 훈장으로 삼으려고 했던 것 같다.

 조그만 비행기는 휴가를 보내고 고국으로 돌아가는 페로제도의 사람들로 가득했다. 신기했다. 아, 사람이 살아가는 곳이었지.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웃음이 났다. 좌석 앞에 꼽혀 있는 책자를 열심히 읽는 나를 흥미롭게 보던 중년의 부부는 나에게 이런 곳들이 좋다며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이 대책없는 여행자는 리스닝도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노트에 펜으로 하나씩 적어주면서, 한국이라는 어딘지는 몰라도 아시아 멀리에서 여행 온 나를 신기해 하면서. 나도 그들이 신기하고 그들도 내가 신기했다. 새로운 화폐를 손에 쥐고, 페로제도의 수도인 Tórshavn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아이슬란드와 비슷했지만 조금 더 온화한 풍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해가 지면서 바닷가를 둘러싼 작은 마을의 집들은 불을 밝혔고, 그 작은 불빛들의 흔들림과 어둑해지는 바다의 잔잔한 물결과 짙은 남색부터 붉은 색까지 갖가지 색을 화려하지 않게 풀어내는 하늘을 봤다. 아름다운 자연들이 그 아름다움을 결코 부담스럽게 뽐내려고 하지 않는 섬이었다. 그 점이 좋았다.


 Tórshavn에서 저렴한 유스호스텔까지 멀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인도에 무차별적으로 똥을 싸지르는 말과 함께 걸어오는 여자에게 물었더니 환한 미소로 거기는 이 배낭을 매고 걸어가기엔 너무 멀다고, 가까운 다른 곳으로 가 보라고 했다. 항구와 작은 기념품 가게들을 지나 골목을 헤맸다. 드디어 길을 잃었구나 싶은 순간 호스텔을 발견했다. 너무 늦은 밤이었지만 주인과 무료 전화통화가 가능했고, 키를 찾아 방으로 들어갔다. 동양인 한 명, 백인 한 명이 누워있었다. 어 안녕. 나는 당황했다. 여기에도 여행자가 있구나? 생각해보면 조금 우습다. 나 역시 여행자로 이 곳에 와서 유스호스텔을 찾았으면서, 동시에 여행자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니. 아무리 알려지지 않은 작은 세상에 가도 거기에는 사람이 있고 여행자가 있다. 무슨 당연한 소리를 하느냐고 할지 몰라도 그건 내가 여행을 하면서 몸으로 확인한 거대한 무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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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orldofddanj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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