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년 8월 24일. 아이슬란드 다섯째 날

 오늘은 Iceland on your own 버스를 이용해 용암지대인 krafla와 유럽 최대 규모의 폭포인 Dettifoss를 둘러보기로 했다. 아침 8시에 Reykjahlíð를 출발해서 3시간 반 동안 krafla를 둘러본 뒤 Dettifoss로 이동해 1시간동안 구경하고 다시 Reykjahlíð로 돌아오면 바로 Trax버스를 타고(bus passport 이용) Akureyri에 도착할 수 있었다. Iceland on your own 버스의 도착시간과 Trax 버스의 출발시간이 같아서 걱정되긴 했지만 별 수 없었다. 운이 나쁘면 여기 하루 더 머무는 수밖에.

 (아이슬란드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을 위해 정리하자면, Iceland on your own, Trax 모두 왕복 버스와 가이드의 설명이 포함되어 있는 투어프로그램이 있다. 하지만 내가 이용한 버스패스는 단지 구간을 연결해주는 일반버스노선 티켓이다. 이런 일반버스패스의 경우 Iceland on your own은 Reykjavik을 중심으로 유명한 관광지를 오가는 - 혹은 그 지역들을 연결하는 - 노선이 많고, Trax는 아이슬란드 전체를 순환하는 노선이 잘 되어있다. 물론 다른 작은 투어회사들도 존재한다.)

 아침에 창을 뒤흔드는 바람과 빗소리에 깜짝 놀라 깼다. 어제 저녁부터 하늘이 흐려 심상치 않더니 비바람이 거세다. 이거 오늘 구경을 할 수 있는 걸까, 버스가 운행하기는 할까, 싶지만 일단 짐을 싸고 나가보기로 했다. 산지 얼마 되지 않은 침낭을 다시 싸는데 한참의 시간이 들었다. 미리 표를 산다면 예약자 명단이 있을 테니 조금 늦더라도 버스가 기다려주겠지만, 아이슬란드의 버스는 미리 표를 구입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버스에 오르면서 운전사에게 이 버스 루트 중에 내릴 곳을 말하면서 거기까지의 버스비를 지불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늦는다고 기다려 주는 것 없이 정시 출발이다. 중무장을 하고 나섰지만 침낭은 걸을 때마다 덜렁거리고 비바람에 우산과 비옷이 아우성이었다. 찢어진 우산살이 머리 뒤로 넘어가면서 침낭을 묶은 신발끈 매듭과 엉켜 비오는 도로 한 복판에서 우산과 사투를 벌이는데, 누가 날 본다면 참 처량하면서 우스꽝스럽겠다 싶었다. 결국 우산대는 휘어졌고, 그냥 비를 맞아가면서 정류장까지 달려갔다. 버스는 이제 막 출발하려던 참이었다.


 이 날 날씨가 얼마나 안 좋았던지, 버스는 중간 중간 멈춰서 비바람이 사그라질 때까지 기다렸다. 버스가 도착하더라도 뭔가를 ‘구경’할만한 상황일지 모르겠어서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따뜻한 버스에서 창밖의 거친 풍경을 바라봤다. 버스에는 나이 많으신 어르신들과 젊은 유럽 배낭여행객 한 무리가 전부였다. 화산활동으로 뜨거워진 물이 연기를 모락모락 피워내는 들판을 지나 krafla 분화구 입구에 도착했다. 버스는 2시간 반 정도 뒤에 도착할 거라고, 짐은 그대로 두고 내려도 된다고 한다. 사실, 날씨도 안 좋고 버스가 따뜻해 내리기 싫었지만 ‘열심히 구경해야지’라며 마음을 고쳐먹었다.


 진흙이 된 언덕을 걸어 올라가니 분화구에 작은 바다가 고여 있었다. 나와 함께 내린 젊은 청년들은 방수 옷을 점검하기도 하고 지팡이를 조립하기도 하면서 뭐라 뭐라 떠들어댄다. 생각해보면 청바지에 그냥 운동화, 방수되는 외투라고는 전주영화제에서 받은 빨간 비닐 옷(등에는 STAFF라고 크게 적혀있다.) 하나 가져온 나는 정말 준비를 안 했구나 싶었다. 분화구를 따라 한 바퀴 돌 수 있도록 길이 나 있었는데, 산 정상이라 바람이 거센데다 땅도 질어서 걷기에 좋지 않지만, 아니 조금 위험하지만 별 수 있나 라는 생각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 때 뒤에서 여자애가 나를 붙잡는다. 누군가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오는 것은 처음이라 당황한 나머지 무슨 말을 하는지 못 알아들었다.

“지금 혼자 트래킹 하는 건 좀 위험하잖아. 괜찮으면 우리랑 같이 갈래?”

 여러 사람들과 인사하고, 도움을 받았지만 배낭여행자들에게 이런 식의 친절은 처음이었다. 배낭여행자들은 함께 버스를 기다리며 초조해 하거나 정보들을 나눌 때, 혹은 서로의 배낭을 보면서 잠깐 연결되는 듯 하지만 대개 독립적으로 행동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배낭여행자들이란 혼자 혹은 두 명이서 여행하는 경우라고 해 두자. 세 명 이상의 사람이 함께 여행을 하는 경우, 그들과 가벼운 인사 이상의 교류는 사실 불가능에 가까웠다.) 게다가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친지라 (이제 겨우 아침 9시인데!) 그런 제의가 정말 고마웠다.


 알고 보니 이 친구들 역시 서로 모르는 배낭여행자들이었다. 지도를 가지고 앞장서 트래킹을 주도하는 스웨덴의 여자 여행자 둘과 독일에서 왔다는 남자 배낭여행자, 그리고 어디서 왔는지는 잊어버렸지만 커플 한 쌍의 일행에 한국에서 온 남자애 한 명이 추가되었다. 여행자들끼리 만날 때는 늘 그렇지만 서로의 국적과 (오, 5년 전쯤에 독일에 가봤어! 라거나-) 여행경로를 주고받으며 (난 Höfn으로 갈 거야. 아 나 거기에서 오는 길이야. 시계방향으로 여행하고 있거든!) 비오는 길을 걸었다. 분화구를 둘러보는 건 포기하고, 화산활동으로 아직도 뜨거운 기운이 올라온다는 Leirhnjúkur로 방향을 돌렸다.



 계란 썩는 유황냄새가 진동하고 아직도 화산활동이 멈추지 않았기 때문에, 안전한 길을 따라 뿌려놓은 황갈색 모래를 따라 걸어야 했다. 길과 가까운 곳에는 약간의 이끼들과 목초들이 자라고 있었지만 멀리에는 갈색 메마른 흙과 검고 큰 돌들이 이 곳은 사람들이 영향을 미칠 수 없는 곳이라는 걸 강하게 주장하고 있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하늘 아래에서 유황 냄새와 하얀 연기를 뿜어대는 검은 돌들 사이를 걸으니, 지옥이 따로 없다. 오래 전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이 섬 어딘가에 지옥의 입구가 있다고 믿었단다.






 사실, 정신이 없어 풍경을 차분하게 감상한다거나 할 겨를이 없었다. 다시 돌이켜보면, 비를 맞으며 거친 들판을 오르내리면서 본 이 생경한 풍경은 세상의 한 부분과 이어져 있다기보다는 뚝 떨어진 착란속의 이미지로 머릿속에 남아있다. 두 발로 충실하게 걸어가서 본 풍경이 아니라 비바람에 갇혀 있다가 갑자기 마주한 공간이어서 그런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한 바퀴 돌고 나올 즈음에는 구름이 사라지면서 파란 하늘도 보이고 (우리는 하늘을 바라보고 환호성을 질렀다.) 비바람도 잦아들었다. 우리는 도로 옆 화장실 앞에 일렬로 앉아 버스를 기다리며 추위와 날씨, 아이슬란드 여행에 대한 소소한 정보들을 나눴다. ‘이거 먹을래?’라며 건네준 견과류의 고소함에 만족해하면서.



 돌아온 버스를 타고 Dettifoss와 Selfoss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돌아가는 버스까지 한 시간의 여유가 있어 Selfoss를 먼저 보고 Dettifoss를 구경하기로 했다. 유럽의 어떤 폭포보다 ‘greatest volume’을 자랑한다는 Dettifoss를 나중에 봐야 감흥이 전해질 것 같아서였다. (나는 뭔가 아끼는 것, 중요한 것, 기다리던 것을 나중으로 미루는 편이다.) 습지 초원지대 같은 Selfoss 가는 길을 조심스럽게 걸어가 폭포를 보며 사진을 찍고, 바위에 앉아 폭포를 보며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다. 다들 유명한 Dettifoss를 보러가서인지 한적했고, 홀로 자연을 만끽하기엔 아주 좋은 오후였다. 아주 위험한 지역을 제외하고는 안전을 위한 망이나 가로막이 없는 것은 아이슬란드 자연 관광지의 또 다른 특징이었는데, 바위 아래로 아찔하게 떨어져 내려가는 수직의 이미지와 거대한 물살은 내가 얼마나 ‘작은 스케일’로 살아왔나 돌아보게 했다.



 점심을 먹고 정신 차려 시계를 보니 20여분밖에 시간이 남지 않았다. Dettifoss를 보려면 버스에서 내렸던 곳으로 돌아가 다시 반대쪽으로 걸어가야 한다. 그제서야 사태를 파악하고 땀을 뻘뻘 흘리며 폭포를 향해 달렸다. 함께 Leirhnjúkur를 트래킹 했던 친구들이 Dettifoss를 보고 버스로 돌아오면서 지나가는 나를 보고 ‘안녕 여행 잘 해!’라며 인사해준다. (지금시간이면 폭포를 보고 버스로 돌아가야 할 텐데 이제 그곳으로 향하는 나를 보고 다른 버스를 이용할거라고 생각했나보다.) 결과적으로 그 거대하고 엄청난 폭포 앞에서 5분밖에 있을 수가 없었고, 재빠르게 사진을 찍고 레코딩을 하고, 폭포를 멍하니 - 하지만 시계를 바라보며 초조한 마음으로 - 바라보다가 다시 버스를 향해 달렸다. 겨우 버스에 탔지만 사실 머릿속에 마음속에 남는 이미지가 지금은 없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깨달았다. 기회가 있을 때 하려던 것을 혹은 하고 싶었던 것을 먼저 해야 한다는 것, 여행에서는 기회가 있을 때 잡아야 한다는 것을. 현상된 사진을 보고 “내가 이런 곳에 갔었단 말이야?”라고 생각하지 않으려면 가장 소중한 것을 가장 우선에 두고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는 것을. 물론 그 뒤로도 ‘소중한 것을 나중으로 미루는 습관’ 때문에 놓친 것들이 많다. 삶의 버릇이란 오랜 시간동안 쌓여 생기는 것이라 쉽게 지워지지 않기 때문에.



 출발시간이 지나 불안감이 땀과 함께 축축이 베어 나오는데 멀리 버스가 보인다. 함께 트래킹하면서 심심하고 혼자인 게 외로워 보였는지 친절하게 말을 걸어주었던 독일 친구가 운전기사에게 한 친구가 더 올 거라고 말 해 두었나보다. 새빨개진 얼굴로 버스에 오르니 아까 인사했던 스웨덴 여자 친구들이 놀란 얼굴로 “Dettifoss 보고 온 거야?”라고 묻는다. 짧은 시간에 훑고 온 ‘관광’에 부끄럽기도 하지만 씩 웃으며 엄지를 들어보여 줬다.

 이 버스의 운전기사는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았는데, 나는 다시 Reykjahlíð로 돌아가면 되고 이 시간대에 버스는 Reykjahlíð로 돌아가는 거 한 대 밖에 없는데 자꾸 아니라고 손사래를 친다. 결국 운전기사 아저씨는 영어를 잘 한다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통역을 시도했는데 ‘이 버스는 먼저 Akureyri에 갔다가 다시 Reykjahlíð에 간다’ 란다. 무슨 뜻이지? 옆에 앉은 독일 친구도 잘 모르겠다고 한다. Reykjahlíð에서 Akureyri로 가는 버스를 타야하니, 어찌하든 상관 없긴 하지만 버스패스를 이용해야 교통비를 아낄 텐데... 아저씨는 우리를 베려하듯 국립공원 중간 중간에 세워 쉬는 시간과 함께 산책을 할 수 있게 여유시간을 주기도 했다. 고맙긴 한데, 시간은 자꾸 늦어져 가고 아무래도 버스는 다른 곳으로 가는 것 같고.... Reykjahlíð으로 돌아가야 하는 독일 친구도 당황스러워하는 눈치다.

 점점 아이슬란드의 아름다운 풍경에도 무뎌지고, 아침부터 비바람과 폭풍에 진이 빠져 유리창에 머리를 박아가며 잠이 들었다가 나를 흔들어 깨우는 운전기사 아저씨에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W@# bus...@#^@^7”

 버스를 갈아타야 하나보다. 이들은 늘 이런 식이다. 투박하지만 친절하다. 아이슬란드어는 전혀 늘지 않고 있지만 ‘여행 눈치’라는 게 이렇게 느는 거구나 새삼 신기해하며 짐을 좀 더 작은 버스에 옮겼다. 피곤함에 뒤척이는 친구들에게도 눈인사로 고마움을 전했다.

“우산 이거 니 꺼야?”

 아저씨가 짐칸에서 배낭과 함께 딸려 나오는 우산을 들고 묻는다. 아침에 폭풍과 씨름하느라 박살이 난 그 우산이었다. 음... 몇 초간 고민하다가 “아니 내 거 아니야.”라고 말하고 돌아섰다. 약간 마음에 찔렸지만, 거리에 버리는 건 아니었고 나는 너무 피곤했다고 위로했다.

 저녁 6시, 버스가 Akureyri에 도착했다. 구입했던 Trax의 버스패스 대신 Iceland on your own의 버스로 이동하느라 6000ISK의 추가지출이 있었고, 도대체 왜 이 버스가 시간표대로 다시 Reykjahlíð로 돌아가지 않은 건지 알 수 없지만 여행을 떠난 뒤로 그런 것에 마음 쓰는 일은 접어두었다. 사실 나는 굉장히 소심하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편이다. 아무튼 이렇게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았는가! 6만 5천원 정도 되는 영수증을 손에 꼭 쥐고 (부들부들), 그렇게 생각하며 위로했다.

 여행의 묘미는, 발음하기 어려운 이름을 가진 곳에 첫 발을 내딛을 때, 바로 그 때에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아이슬란드에서는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자연을 버스로 계속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초현실적인 풍경을 바라보다 새로운 마을에 도착할 때면 마음이 묘하게 두근거린다. 여기엔 또 어떤 일상들이 있을까, 내가 무엇을 보고 발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들.

 짐칸에 있었던 무거운 배낭을 건네받아 메고, 버스에 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저 어린 청년이 저 큰 배낭을 메고 혼자 여행을 하네, 참 장하다’라는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을 거라는 착각에 빠져 뒤돌아보지 않고 당당하게 걸음을 내딛는다. 어제 Mývatn에서 전화했을 때 유스호스텔이 꽉 찼다고 했지만 일단 다시 한 번 가 보기로 한다.

 여행을 하면서 가장 힘들 때는, 잠 잘 곳을 찾을 수 없을 때이다. 사실 그 비용이 문제가 돼서 그렇지 결국 어딘가 잠자리는 있고, 잠을 잘 수 있다. 어디서 읽었는지 생각은 나지 않지만 ‘내 몸을 뉘일 잠자리가 없다는 것, 누구도 나를 찾지 않는다는 느낌’이 사람을 힘들고 지치게 만든다. 일요일의 Akureyri는 유스호스텔을 비롯해 론리 플래닛에 나와 있는 모든 게스트하우스들이 ‘자리 없음!’을 외쳤고, 나는 무거운 배낭을 앞뒤로 맨 체 숙소를 찾아 작은 마을을 왕복해 가로지르기를 반복했다. (Akureyri는 아이슬란드 북부의 가장 큰 도시다. 도시라고 하기에는 조금 쑥스럽게 소박하지만...)

 이 날부터, 나는 여행 중에 주말을 싫어하기 시작했다. 대중교통은 제멋대로 룰을 바꿔가기 일쑤인데다가 잠자리를 구하기는 더 어려워지고 (혹은 값이 비싸지고), 관광객들이 거리에 넘쳐나서 겔러리를 가는 것도 산책하는 것도 귀찮아진다. (그 이후에 런던이나 파리에서도 주말에는 ‘관광객들이란!’ 이라고 귀찮아하며 집에 틀어박혀 있기 일쑤였다. 나 자신도 여행자인 주제에.)

 막 도착한 도시는 점점 어두워지고, 나를 반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몸을 뉘일 곳도 없다. 너는 이 곳 사람이 아니지 않느냐고 온 세상이 말하는 것 같아 몸보다 마음이 먼저 지친다. 마을 주차장에서 놀던 아이들이 나를 보더니 창을 내리고 중국말과 아이슬란드 말로 뭐라고 소리 지른다. 대꾸할 힘도 없어 그냥 지나가다 뒤돌아서 “야 이 XX놈들아!”라며 소리 질렀다. 그래봤자 욕했다는 사실에 기분 나빠지는 건 내 쪽 이지만, 시원하게 욕이라도 ‘싸질러야’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마치 한국 사람을 대표하는 것처럼 친절하려고 노력하지만 이따끔 치밀어 오르는 감정들은 어쩔 수 없다. 나도 그냥 사람이라서.

 결국 호텔에서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어야 했다. 6900ISK(한화 약 7만 5천원)나 지불해야 하는데 인터넷도 되지 않는단다. 2~3만원 짜리 도미토리나 게스트하우스(의 서재 방바닥) 같은 곳에서 자다가 깨끗한 1인실 숙소에 오니 기분이 좋아야 하는데 지출이 컸다는 생각에 우울함이 앞섰다. 짐을 바닥에 내팽개치고 푹신한 침대에 널브러져 멍하니 있다가 벌떡 일어나 간단히 샤워를 하고 거리로 나섰다.

 북부의 수도라고 부를 수 있는 Akureyri라지만, 도심이라는 번화가는 딱 세 블록 정도이고 인사동보다 좁다. 지도를 보니 더 멀리에 위치한 대학과 주택을 중심으로 ‘생활도시’에 가까운 것 같았다. 언덕 위에 있는 교회에 올라 야경을 보고, 물어물어 공중전화가 있는 수영장에서 내일 머물 숙소에 전화를 걸었다. (정말 젠장이다. 모두 꽉 찼단다.) 잠시 머물렀던 수영장이지만 인상 깊었던 것은 장애우를 위한 모든 시설이 갖춰져 있었던 점이다. 계단을 없엔 출입통로와 리프트는 물론, 수영을 할 때도 무리 없도록 수영장에 설치된 시설, 그리고 그것보다도 그런 것들이 너무 자연스럽고 당연하다는 듯한 그들의 복지가 부러웠다.

 지친 몸을 이끌고 마트로 향했다. 너무 늦은 건지 24시간하는 마트에는 아르바이트하는 여자아이 한 명 뿐이었다. 여행을 떠난 뒤 입에 달고 다니는 콜라, 요리를 할 줄 몰라 인스턴트 파스타, 왠지 몸에 좋고 아침으로 때울 수 있을 것 같아 조리된 샐러드... 장바구니에 더 채워 넣을 만한 게 없음을 깨닫고 뒤돌아 계산대로 가니, 창밖을 바라보며 긴 머리를 만지작 하던 여자아이가 창문에 반사된 내 모습을 보았는지 몸을 훽 돌린다. 아주 예쁜 얼굴은 아니지만 - 사실 지금 와서 말하자면 얼굴이고 뭐고 전혀 떠오르지 않지만 - 그 모습이 너무 외로워 보여서 마음에 들었다. “음.. 여기 24시간 하는 거지?” 알면서도 괜히 말을 건네고 그냥 돌아섰다. 아 아르바이트가 몇 시에 끝나는지 물어볼 걸 그랬나? 아니면 내가 옆에서 말동무가 되어주면 안되겠냐고 말해볼 걸 그랬나? 말도 안 돼, 그런 말을 하고 있는 내 자신이 상상조차 되지 않아 피식 웃으며 숙소로 돌아왔다. 오래간만에 사람이 많은, 하지만 반겨주는 이 하나 없는 도시에서 느낀 외로움을 늦은 밤 아무도 없는 마트에서 창 너머의 밤거리를 보던 여자아이에게서 봤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냥 여행 중의 ‘로멘쓰’ 같은 걸 은연중에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그냥 망상이었다. 1인실에 누워 7만원 짜리 잠을 잤다. 오늘은 침낭을 펼 필요도 없다.


'로드무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이슬란드 여행기 6  (8) 2010.01.04
아이슬란드 여행기 4  (8) 2009.11.03
아이슬란드 여행기 3  (17) 2009.11.03
Posted by worldofddanji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