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년 8월 22일. 아이슬란드 셋째 날

 딱딱한 바닥과 얇은 담요에 오들오들 떨다가 계획보다 일찍 일어나 샤워를 하고 주인에게 방값을 지불했다. 가까운 Svartifoss 폭포까지 하이킹을 하고 올 계획인데 짐을 12시까지 여기에 둬도 괜찮겠냐고 하니 문제없다고 다녀오란다. 최대한 가볍게 작은 배낭을 꾸려 나왔다. 산 중턱의 아침은 조금 쌀쌀했지만 햇살이 머리 위로 내리쬐고 있었고 조금 걸으니 곧 땀이 차올라서 오히려 좋았다.

 Skaftafell의 표지판은 몇 가지 면에서 조금 황당했다. 중간 중간 세워둔 공원 전체 지도에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전혀 표시가 되어 있지 않았다. 현재 위치를 전혀 알 수 없는 지도만큼 무의미한 게 있을까? 그래서 앞선 여행객들이 손톱으로 지도에 현재 위치를 깊게 표시해 두었다. You are Here! 이라는 빨간 스티커는 없지만, 그 분노의 스크래치가 모든 걸 설명해주고 있었다. 또 갈림길의 표지판은 비교가 불가능한 두 지역을 가리키고 있어서 지도를 한참 들여다보게 만들었다. 이를테면 오른쪽을 가리키는 표지판에는 약 100m만 가면 되는 목적지를 표기하고 있는 반면 왼쪽을 가리키는 표지판에는 5km는 가야 도착할 수 있는 가장 깊은 목적지를 가리키고 있는 식이다. 그렇게 멀리 있는 걸 벌써부터 알려 줄 필요는 없잖아! 가까운 것부터 차근차근 알려달라고! 황당해 하면서 돌아 돌아 Svartifoss로 향했다.
 아이슬란드어로 ‘-foss’라는 말이 붙어있다면 폭포를 의미한다. 거친 지형이 많고, 빙하가 녹아 만들어내는 물길은 아이슬란드 곳곳에 크고 작은 폭포들을 만들어 내고 있는데, Svartifoss는 규모가 크고 압도적인 폭포는 아니었지만 그 지형의 독특함으로 유명한 폭포였다. Bölti쪽에서부터 출발하는 길은 보통 폭포를 가는 길과는 반대쪽에 있어서 나는 폭포 위쪽에 먼저 도달했다. 멀리서 아주 작은 솨아-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어느 순간 깊게 U자 형으로 꺼진 지형에 이르자 폭포소리가 청각을 장악했다. 물의 양이 많지는 않았지만 위로부터 매달려 있는 기다란 돌들의 커튼이 감탄을 자아냈다. 고등학교 때 제주도로 자연탐사를 하러 가서 봤던 주상절리의 형태인데,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떨어져 나간 돌들이 만들어낸 깊이와 층이 신기했다. 자연이 만들어 낸 교회의 건축양식 같다고 해야 할까? 폭포 가까이에 걸터앉아 어제 산 샌드위치와 물을 마시고 사진을 찍었다.



 Bölti로 돌아와 짐을 챙겨 Skaftafell 입구로 돌아왔을 때는 12시가 채 되기 전이었다. 다음 버스는 2시 50분에 있었는데, Jökulsárlón을 거쳐 Höfn까지 가는 버스였다. Jökulsárlón은 빙하투어로 유명한 곳이어서 들리려고 했는데 문제는 이 버스가 하루에 한 번 뿐이라는 것이었다. Jökulsárlón에서 내린다면, 다음 버스를 타기 위해 거기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오후 4시까지 있어야 했다. (그리고 가까운 숙소라곤 13km는 더 가야 있는 7000ISK 이상의 호텔 하나 뿐 이라는 론리플래닛을 읽으면서 감을 잡긴 했지만, 여기는 빙하투어를 위해 개발된 곳일 뿐 근처에 집이라곤 하나도 없는 허허벌판이었다.) 답은 하나, 히치하이킹을 해서 Jökulsárlón까지 간 뒤에 빨리 투어를 보고 거기에서 버스를 잡아타서 Höfn에 가는 것이었다.
 난생 처음 해 보는 히치하이킹이지만, 아이슬란드 사람들이 친절하고 또 주민들에게도 히치하이킹이 흔한 방법이라는 글을 인터넷에서 읽고 힘을 내기로 했다. 하지만 토요일 아침, Skaftafell을 지나가는/빠져나오는 차를 히치하이킹 하는 건 생각보다 어려웠다. 대부분이 휴가 혹은 주말을 맞이해 가족단위로 여행을 나온 사람들이었고, 자리가 가득 찬 차들은 키 작고 가여워보이는 동양 남자아이를 흘깃 쳐다보고는 그대로 달리기 일쑤였다. 야심차게 엄지를 내밀고 도로에 서 있었지만 점점 의기소침해졌다. Vik에서 하이킹을 할 때, 골짜기 너머로 히치를 시도하던 배낭 여행자에게 기분 좋게 손을 흔들어 준 적이 있었는데 그 사람도 속은 바싹바싹 타고 있었겠구나 싶었다. 20분정도 히치하이킹을 시도했을까? 결국 체념하고 인포메이션 센터로 돌아와 쉬다가 버스를 타기로 했다.
 계획은 늘 틀어진다. 중요한건 그 속에서도 여행의 여유와 긍정이다. 히치하이킹을 고려해서 일찍 내려온 덕에 시간이 충분해서, 휘청이는 배낭을 인포메이션 센터에 맡긴 후 가장 가까운 빙하지대인 Skaftafellsjökull까지 1시간 반 정도의 트랙킹 하기로 했다. 이 길은 산으로 올라가는 게 아니라, 산의 옆을 따라 평지를 걷는 편안한 길이었다. 왼쪽으로는 깎아놓은 절벽이 있고, 오른쪽으론 사막 같은 풍경이 펼쳐져 있는데 앞쪽으로는 멀리 빙하가 보이는 묘한 길을 따라 걸었다.




 아이슬란드는 높이 삐죽 솟은 풍경 없이 탁 트인 자연풍경을 가지고 있다. 이게 참 묘한데, 분명히 가까이서 보면 절벽처럼 깎여 내려가는 산인데도 그게 아주 드넓은 평야에 펼쳐져 있어 시각적으로는 낮고 온화해 보이는 것이다. 탁 트인 풍경 때문인지 가까워 보이는 곳도 생각보다 멀리 떨어져 있어 걷다가 놀랄 때가 많다. Skaftafellsjökull로 가는 길을 걸으면서, 난생 처음 안경 때문에 제한된 시야를 의식했다. 내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너무 깨끗하고 드넓어서, 얇은 안경테가 얇음에도 불구하고 내 눈과 풍경 사이의 그 작은 장애로 인해 시야가 답답하게 느껴지는 지경에 이르는 것이다. 내가 그 느낌을 글로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 같지만, 그걸 의식하게 됐을 때의 놀라움이란. 안경을 벗으니 시야는 조금 흐려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더 깨끗하게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눈을 잡아끄는 자극도, 피곤하게 만드는 현란함도 없는 풍경을 그대로 내 눈에 담았다.
 빙하지대는 겉으로 보기와는 달리 걸어가기에 불가능해 보였다. 조금씩 녹아내려 뻘처럼 변하는 땅에서 미끌어지기를 수차례 반복한 뒤, 다음을 기약하고 돌아섰다. (실제로 빙하 위를 걷는 투어프로그램을 인포메이션 센터 앞에서 등록할 수 있다. 개인이 혼자 하기에는 위험하기도 하고, 이 프로그램을 이용할 경우에는 전문가와 장비가 제공되어 더 좋을 것 같다.)



 트래킹을 마치고 돌아와서, 인포메이션 센터에 맡긴 짐을 찾아 나서는데, 창문에 붙어있는 광고가 눈에 들어온다. “Iceland on your own : Skaftafell-Jökulsárlón 왕복버스” 아 맞다! 버스 passport를 구입할 때 두 개의 회사중에 Iceland on your own passport는 한정된 지역을 오가는 버스뿐이어서 Trax를 선택했는데, Iceland on your own은 1시에 Skaftafell을 출발해 1시 15분에 Jökulsárlón에 도착하는 버스가 있었다. 나는 Trax의 passport를 구입해서 이 회사의 버스시간표만 살펴보고 있었던 것이다. 시계를 보니 12:55분. 황급히 달려가니 주차장에 Jökulsárlón으로 가는 버스가 있다.
 “우와. 이거 Jökulsárlón 가는 버스야?” 신나서 물어보니 그렇단다. 1800ISK를 추가로 지불하게 됐지만, 포기했던 Jökulsárlón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졌다. 이 버스는 1시 15분에 Jökulsárlón에 도착하고, 거기서 4시에 출발하는 Trax 버스를 passport를 이용해서 타면 오늘 Höfn에 도착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Skaftafellsjökull 트랙킹도 하고, Jökulsárlón에도 가게 된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다 길이 있구나. 뭐랄까, 여행자로서의 마음가짐을 하나 배운 것처럼 뿌듯해졌다.

 Jökulsárlón의 빙하투어는, 수시로 사람들을 모아 인원이 차면 수륙양용차를 타고 투어를 하는 방식이었다. 표를 사고 짐을 건물 뒤에 던져둔 뒤 방수조끼를 입고 차에 올라탔다. 차갑게 투명한 물을 가르면서 수천년의 시간을 차갑게 다스리며 보냈을 빙하들을 보는 건 정말 상쾌한 일이었다. 큰 압력으로 밀도가 높은 얼음이 된 빙하 조각을 직접 보여주고, 들어보고, 심지어 한 조각씩 맛 볼 수도 있었다! 천년 된 얼음조각의 맛은, (다른 얼음의 맛과 다를 바 없었겠지만) 또 너무나 다른 맛이었다.









 투어를 마치고 빙하가 만들어낸 호수 앞의 큰 언덕에 올라 드넓게 펼쳐진 평야와, 하늘을 그대로 반사해내는 깨끗한 물과, 빙하와, 눈이 덮인 산을 바라보며 마음이 평온해졌다. 하늘은 어느 때보다도 온화했고, 바람은 어느 때보다도 시원했다. 비행기 한 대가 깨끗한 하늘을 가르면서 자신의 흔적을 남길 따름이었다. 그 비행기를 바라보면서, 문득, 나도 그 비행기처럼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디가 길인지도 알 수 없는 드넓은 삶 속에서 망설임 없이 자신의 길을 걸어가면서, 선명한 선을 남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Höfn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면서 Jökulsárlón cafe에서 사람들에게 보낼 엽서와 샌드위치를 샀다. 론리플래닛에 의하면,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맛있는 해물스프를 먹을 수 있는 곳이라고 하지만, 버스비에 예상치 못한 지출을 한 나로서는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이 샌드위치도 거위고기가 들어간 아주 특이한 것이었는데, 샌드위치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기름지고 느끼한 음식이었다. 아이슬란드 아니면 또 어디서 먹어보겠어? 라고 생각하면서 기름진 샌드위치로 점심을 해결했다.

 Höfn이라는 마을은 12번 버스가 도착하고, 새로운 9번 버스가 출발하는 곳이긴 하지만 정말 작고 조용한 항구마을이었다. (반경 1km안에 마을과 시설들이 다 있는 정도이다.) Youth hostel도 있지만 일단 가까운 Höfn Camp Site에서도 Sleeping bag site가 있다고 해서 안내데스크로 갔다.
 “안녕. 오늘 하룻밤 자려고 하는데, 방 있어?”
 “음. 슬리핑백은 아니고 Cabin이 있어.”
 Cabin이 뭐지? 뭔지는 몰라도 책을 찾아보니 6-person cabins가 6500lkr(65000~70000원) 으로 나와 있다. 허걱.
 당황해서 “아니야;; 나 가장 싼 잠자리를 찾고 있어.” 라고 말하자
 “아, 집을 다 빌리는 게 아니고 침대 하나 빌리는데 2500lkr이야. 대신에 다른 사람과 나중에 집을 share해야 할 수도 있어.” 란다.
 호스텔은 2200lkr이라고 책에 나와 있어서, 조금 더 싼 곳을 찾아 가 볼까 고민을 했지만, 마을의 완전히 반대편이라 이 짐을 메고 거기까지 가기가 굉장히 피곤하기도 하고 또 거기에 자리가 있다는 보장도 없어 그냥 여기서 머물기로 했다. 인포메이션 센터를 둘러보니 캠프사이트를 관리하고 있기도 하고, 각종 물품들도 팔고 있다. 혹시나 해서 침낭도 파냐고 하니 3가지 종류를 판매하고 있다고 데려가 보여주고, 내가 난감해 하자 라벨을 일일이 꺼내 성능을 비교해 주었다. 비록 9995lkr- 한화로 10만원에 가까운 돈이지만, 아이슬란드 도착 첫 날부터 슬리핑백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기에 고민하지 않고 마음에 드는 따뜻한 녀석으로 구입했다.

 Cabin이 뭘까 하면서 나왔는데 너무 근사한 오두막집들이 늘어서 있었다. 가장 가까운 Cabin에 있던 한 아저씨가 손을 흔들어 인사한다. 서로 인사를 하고, 어디에서 왔는지- 그는 독일에서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왔다고 한다 - 이야기를 나눴다.
 “오! 코리아! 나 가봤어 코리아. 김치, 맵지만 좋아해!”
 한국이야기를 들으니 신기하다. 어디서나 국적을 물어보고 한국이라고 하면 알기는 하지만 가본 적은 없다는 사람들이 전부여서, 이번에도 그런 대답을 기대했는데 전혀 의외로 한국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나 평양에도 가 봤어.”
 “정말? 거긴 나도 못 가봤는데. 아마 우리들(한국사람들)이 더 가기 어려울 거야. 정말 신기하다! 나보다도 한국을 더 많이 여행했을 것 같은데?”
 그렇게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내가 그 가족의 옆집에서 지낸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루뿐이지만 이웃으로 잘 부탁한다며 기분 좋게 인사하고, 오두막집의 문을 열었다. 세상에. 이렇게 완벽할 수가. 나무로 지어진 오두막집에는 테이블과 의자, 토스트를 할 수 있는 간단한 기기들이 있었고, 그보다 안쪽으로 문을 한 번 더 열고 들어가면 4인용 침대가 있었다. 모든 것이 깨끗하고, 안락하고, 평온했다. “가족들과 함께 하이킹 한다”는 문장을 읽을 때 상상하게 되는 그런 공간이었다. 



 짐을 풀고 침낭을 펼쳐 침대 위에 늘어놓고는 흐뭇해하고 있는데, 누가 밖에서 문을 두드려 열어보니, 독일 아저씨 가족의 아들이 소세지가 많아서 나눠주려 왔다며 한 접시를 내민다. 샌드위치로 저녁을 때워야 할 참이었는데 배려에 너무 고마웠다. 손을 흔들어 고맙다고 이야기하고, 나눌만한 것이 별로 없어서 가져간 녹차 티백을 선물했다. 김치가 있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 사실 여행을 떠난 뒤로 한국음식이 그립거나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이  때는 정말 김치가 아쉬웠다.
 이 작은 마을에도 뮤지엄이 몇 개 있었지만, 내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문을 다 닫았을 저녁이었고 내일 아침 8시 반 버스로 떠날 예정이라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별로 아쉽지는 않았다. 그런 ‘박물’된 공간보다는 이 아름다운 마을을 즐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문 닫기 직전 마트에서 음식들을 사 가지고, 마을을 거슬러 올라가 바닷가를 따라 산책을 했다.



 Höfn은 정말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조용하고 깨끗한 길을 따라 비슷한 듯 하지만 각자의 흔적이 장식된 집 정원에서 한 소년이 작은 자동차를 조립하고 있었고 동생은 오빠의 작업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다로 넘어가는 햇살이 너무 예뻐 카메라를 들었을 때, 저쪽에서부터 달려오던 두 꼬마 소녀들이 수줍게 멈춰서 세상에서 가장 예쁜 사진을 얻을 수 있었다. 까만 머리의 동양인이 신기한 듯 바라보길래 손을 흔들어 인사했더니 자기들도 손인사를 하고는 웃으며 달려간다.




 바닷가를 따라 좁은 산책로가 있었는데 왼쪽으로는 잔디밭과 집, 아이들을 위한 나무로 만들어진 놀이기구들이 있었고 왼쪽으로는 바다와 작은 섬들이 있었다. 바닷가 쪽으로 가장 멀리 나 있는 곳에는 앉아서 쉴 수 있는 벤치가 있었다. 하얀 나무로 만든 벤치에 앉아 5000원이 넘는 바게트 샌드위치(아이슬란드는 국가부도 이후로 화폐가치가 많이 하락했지만, 여전히 식음료는 비싼 편이다)와 펩시를 마시면서 바다와, 섬과, 하늘의 구름들을 바라봤다. 너무 아름다워서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 멍해지는 풍경이었다. 다 마신 펩시를 들고 자리를 뜨는데 불어오는 바람이 빈 펩시페트를 스치면서 희미한 바람 소리를 만들어냈다.
"뱃고동 소리"
 어린 시절 들어본 적도 없는 뱃고동 소리가 이렇다면서 페트병 입구에 입 바람을 불어넣는 놀이를 하곤 했다. 아이슬란드의 바람이 만들어내는 희미한 항구의 소리를 들으면서 어디선가 정말로 떠나고 있을 배와 항구를 생각했다.



 너무 아름다웠다. 매일 이렇게 잔디밭에서 친구들과 뒹굴고, 나이가 들어서는 바다와 노을을 바라보며 벤치에 앉아 저녁을 보낼 수 있는 삶이 너무 부러웠다. 아름다운 마을이다. 작고 심심하지만, 세상과 적당히 거리를 두고 삶을 굽어볼 수 있는 곳이었다. 완벽하기 보다는 완전하게 느껴졌다. 겨우 반나절 머물고 떠나는 마을이지만 아이슬란드 여행을 통틀어 내 기억 속에 가장 아름답게 남아있는 공간이었다. 좋아하는 사람의 손을 마주잡고 살 수 있게 된다면, 이곳도 좋으리라.
 
내 옆 Cabin에서 머물던 독일인은, 나에게 왜 아이슬란드라는 먼 나라로 여행을 왔는지 물었다. 그 뒤에 만난 다른 많은 사람들도 동양의 남자아이가 왜 이 섬까지 왔는지 궁금해했다. 나는 조금 머뭇거리다가 "Sigur rós라는 밴드 알아? 그들이 나오는 다큐를 보고 이 나라에 오고 싶었어. 나의 로망의 여행지였거든." 이라고 대답했지만 사실은 그렇게 말할 정도로 Sigur rós의 팬도 아니고 그 영화에 대단히 매혹된 것도 아니었고, 아이슬란드를 평생 꿈꾼 것도 아니었다. 그저 새로운 세상을 보고싶었고, 사람의 발걸음이 덜 닿았던 곳에 가고 싶었던 것이다. 만약 내가 조금 더 영어를 잘 했다면, 그래서 내 마음을 좀 더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었더라면 이렇게 말했을 거다. "영화에서 얼핏 아이슬란드라는 나라를 본 것 뿐이야. 처음에는 그냥 사람의 때가 덜 묻은 곳으로 떠나고 싶었어. 그런데 여행을 하면서 이 나라는 나의 로망이 되어가고 있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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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orldofddanj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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