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걸으라며 환하게 웃어주는 형을 뒤로하고 피니스테레로 가는 길을 걸으며, 나는 울었다. 울으며 걸었다. 우리가 한달 간 함께 걷고 생활하던 시간이 이제 정말 끝이라는 거,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 각자의 길을 걸을 거리는 걸 모르고 있던 건 아니지만- 이렇게 지나가버린 것이 안타까웠다. 다시 까미노를 걷는다고 해도 이들이 없는 길은 전혀 다른 길이리라. 이제 나는 정말로 홀로 걷는다. 돌아가 산티아고에 함께 있고 싶다고, 하지만 그럴 수는 없는 거라고, 길 위에서 즐거웠던 깊었던 순간들은 이제 끝이라고, 너는 다시 홀로 너의 길을 가야한다는 사실에 울었다.

2009년 12월 7일


팜플로나부터 산티아고를 거쳐 피니스테레까지, 31일간 807.3km의 까미노를 마쳤다. 밤 사이 신발이 홀라당 타버리기도 하고 눈 속에서 길을 잃기도 했지만 그 흔한 물집 한번 잡히지 않고 무사히 걸었다. 사실 나는 이 길이 의심이 많았다. 이 길에 끝에 뭔가를 이뤄내거나 답을 낼 수 있다는 말은 조금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한달이 지난 지금, 나는 그렇게 말 할 수 밖에 없다. 이 길 위에서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느끼고 배웠다고. 그럴 수 있는 길이라고. 어쩌면 이미 내 안에 있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일지 모르지만 책에서 배운 어떤 것들보다 생생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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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orldofddanj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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