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년 8월 21일. 아이슬란드 둘째 날

 잠자리가 불편하지는 않았지만 담요 하나만 가져간 탓에 절반으로 접어 깔고 (동시에) 덮고 자야해서 추위에 종종 깼다.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침낭을 가져와 그 속에 몸을 쏙 넣고 편안하게 자고 있었다. 누나가 ‘너 무슨 노숙할 것도 아니잖아, 다른데도 아니고 유럽인데 침낭까지 사 갈 필요 있겠어?’ 라고 해서 침낭을 안 사왔는데, 알고 보니 유럽에서 제공하는 (sleeping-bag site) dormitory란 매트와 매트를 덮은 얇은 시트가 전부여서, 각자가 알아서 담요나 침낭을 준비해 와야 하는 시스템이었다. (물론 개중에 이불과 배개를 제공하는 곳도 있다. 유스호스텔도.) ‘어휴, 내일 당장 슬리핑백 사야지’라고 생각하면서 깻다 잠들었다를 반복하다 일어나 뜨거운 물로 샤워 했다. 화장실 창 밖으로 보이는 Vik은 말 그대로 ‘청명’하게 맑은 날이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제공하는 아침은 1000lkr (우리나라 돈으로 11000원쯤-)이었다. 이 작은 마을에 아침을 먹을 수 있는 곳이 딱히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이곳의 아침은 어떤지 궁금해서 큰 돈을 지불하고 식당으로 갔다. 샌드위치, 과일주스, 콘프러스트 정도라 조금 실망했지만, 사실 이것들을 각자 식당에서 사 먹는다면 1000lkr은 훌쩍 넘는 금액이라는 걸 안다. 햇살 잘 드는 곳에 앉아 아이슬란드 로컬 잡지를 보면서 천천히 아침을 먹었다. 

 Vik에서 떠나는 버스는 12시 45분에 있어서, 오전에 해변가와 트랙킹 루트를 걷기로 했다. 깎아지는 절벽의 푸른 풀들과 검은 모래들 너머로 빛에 반짝이는 바다의 파도를 보면서 ‘Iceland’라는 이름이 얼마나 잘 못 붙여진 이름인지를 실감했다. 평온한 Vik의 해변을 걸으면서, 인간의 시야가 얼마나 넓은지 느꼈다. 캠코더나 사진기의 렌즈를 통해 보는 풍경은 아이슬란드의 탁 트인 풍경을 조각조각 부셔버려 그 매력을 온전히 담기 어려웠다. 마을의 뒤쪽으로 난 트랙킹 코스는 들판을 따라 난 1시간 반 정도의 아주 온화한 코스였는데, 4륜 자동차로 스포츠를 즐기는 3명을 제외하고 아무도 만나지 않을 정도로 조용하고 사람들로부터 격리된 길이었다. 오전의 햇살과 황금색 들판, 푸른 산등성 너머로는 놀랍게도 흰 빙하가 보였다. 필름 아까운 줄 모르고 사진을 찍고 캠코더로 녹화하면서, 사소한 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산책했다. 








 Vik의 그 마을을 산책하면서, ‘공평함’에 대해서 생각했다. 사람들은 늘 공평하려고 노력하고 그게 옳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압도적으로 아름다운 자연을 보면서, 이곳에 사는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그게 가능한 일일까 싶어졌다. 어제 내가 갔던 펍에서 서빙하던, 동양 남자아이에게도 '공평'하려고 노력했던 (하지만 쉽지 않았던) 이십대 중반의 여자는 아마도 이 아름다운 해변과 들판을 매일같이 바라보며 자랐을 거다. 때로는 이 고요한 아름다움에 답답해하기도 하면서 공부를 마치고, 동네 펍에서 일을 하면서 늙는 것이다. 박 터지게 공부해서 사회로 나가 많은 월급을 받는 사람과 비교해서 이 여자의 삶은 덜 행복한 걸까? 이 곳에 사는 사람들과 그들이 보고 자랄 풍경과 삶을 생각하면서 공평함이라는 기준으로 뭔가를 비교한다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걸 생각하지 않더라도, 이미 자연은 공평하지 않다. 아이슬란드의 이 압도적인 풍경을 한국에서 볼 수 없고, 한국의 절제된 풍경을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볼 수 없다. 이건 너무 불공평하지 않은가?
 하지만 사실, 우리는 불공평한 자연에서 불공평한 삶을 살고 있다. (국가 혹은 더 큰 입장에서는 공평함을 위해 노력해야겠지만) 너무나도 다른 자연과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공평’이라는 건 너무 이상적인 생각이 아닌가 싶었다.


 12시쯤 짐을 싸서 게스트하우스 주인에게 인사를 하고 마을 아래쪽 버스가 멈춰서는 주유소로 향했다. 나중에 이 날의 지출을 정리하면서 깨달은 건데, 자잘하게 배를 채울 생각을 하기보다는 아예 조금 비싸더라도 든든한 밥을 먹는 게 결과적으로는 돈을 아끼는 길이다. 마트에서 큰 요거트 하나 사 먹고는 더 배고픔을 느껴, 결국 주유소 편의점에서 핫도그를 사 먹은 것이다. 이 요거트는 거의 2일 동안 내 배낭 속에서 뒹굴다가 결국 절반정도 비워진 뒤에 버려졌다.

 다음 목적지는 Skaftafell 이라는 유럽에서 가장 큰 국립공원이었다. 이름은 'National Park'지만 빙하와 고산지대가 대부분인 산악지형이었다. 론리플래닛에 의하면 입구 옆에 넓은 캠프사이트가 있지만, 나는 캠프도구는 없었기 때문에 해당사항이 없었고 숙소는 오직 두 군데 뿐이었다. 그나마 하나는 Skaftafell에서부터 5km나 떨어진 곳에 있는 호텔이었고 (거리가 문제가 아니다. 호텔이다.) Bölti라는 게스트하우스는 산 중턱에 있단다. 숙소가 더 있겠지... 하는 어리석은 마음에 버스를 타고 Skaftafell에 갔지만 역시나, 말 그대로 황량한 도로 중간에 국립공원이 있고 주변에는 아무 것도 없다. (심지어 사람이 사는 집도 한 채 없이, 그냥 국립공원만 떡하니 있다.) 그냥 지나치기에는 너무 아쉽고, 일단 내리면 다음 버스는 다음날 2시 50분에나 있다.
 Skaftafell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하이킹 지도를 구입하고, Bölti로 전화를 시도했지만 아무도 받지 않는다. 어쩌겠어. 일단 가봐야지. 17kg정도 되는 배낭을 뒤에, 3kg정도 되는 작은 배낭을 앞에 메고 국립공원 등반을 시작했다. 자연을 최대한 존중하는 아이슬란드답게, 등산로는 한 사람이 지나갈 정도로 좁고, 그 바로 옆까지 수풀이 우거져 있었다. 조금이라도 걸으면 땀이 비 오듯이 내리고, 또 멈춰서면 추운 바람에 소름이 돋았다. 무거운 배낭으로 인해 뼈와 살들이 조금씩 눌려지는 느낌이었다. 아마 키가 5cm는 줄었을 거다. 정말로, 등반을 하면서 키가 줄어드는 느낌이 들었다! 나처럼 배낭을 통째로 메고 등반하는 여자가 지나가면서 미소로 격려를 하기도 하고, 내려오던 아저씨는 나를 보고 배낭 메는 시늉을 하면서 놀라워한다. 중간 중간 검은 모래로 뒤덮혀 황량한- 하지만 너무 아름다운 아이슬란드의 평지를 바라보기도 하고, 빙하가 녹아 흐르는 물이 쏟아지는 폭포를 바로 옆에서 내려다보기도 했다. 속으로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망할 놈의 Bölti! 나오기만 해봐라!’ 를 되뇌이면서. 





 Skaftafell은 자연을 너무 보호하는 나머지, 안내 표지판도 별로 없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한참을 헤매다(알고 보니 Bölti보다 훨씬 더 높이까지 등반했다.) 오래된 집을 구경하는 여자를 만났다.
 “안녕? 혹시 너도 Bölti 찾고 있어?”
 나는 이 여자가 수풀더미의 집을 게스트하우스로 착각한 게 아닐까 해서 말을 걸은 거였는데, 알고 보니 이 집은 Sel 이라고 Bölti에서 조금 더 걸어 올라가면 나오는 유적이었고, 이 여자는 이미 Bölti에 짐을 풀고 등반 중이었다. 물론, 나중에 Bölti에 도착해서야 그 사실을 깨달았다.

 
 “아니, Bölti 여기서 조금만 내려가면 있어. 나도 그리로 가는 길인데, 같이 갈래?”
 오래간만에 휴먼-비잉 을 만나 ‘헤매지 않고 목적지를 향해’ 함께 걸어가는데 그 길이 축복의 길 같았다. 그녀는 자신이 그리스에서 여행 왔으며 친구와 함께 왔다고 했다. 어제는 차를 타고 투어를 했는데, 비가 내려 길 상태도 좋지 않았는데 엄청난 경사를 롤러코스터 타듯이 곡예하고 왔다며 운전기사의 솜씨를 감탄하듯 칭찬하는데 그 표정과 제스츄어가 꽤나 설득력 있다. 옆에서 듣고 있기만 하는데도 내가 마치 그 버스에 탄 것처럼 스릴이 느껴져 웃음이 났다. 여기서 2주 동안 여행하고 영국과 아일랜드를 갈 거라고 하자 가장 좋은 시기에 간다며 부럽다고 한다.
 “응? 10월, 11월이면 너무 춥지 않을까? 난 그게 걱정되는데.”
 “내가 저번 여름휴가 때 아일랜드에 갔는데, 거기 사람이 그러더라고. 3월도 좋고 4월도 좋은데, 가장 별로인 6,7월에 사람들이 왜 여행을 오는지 모르겠다고. 하하. 우리는 직장에 매인 몸인걸.”
 우리는 언제 어디를 여행을 하는 게 좋은가 - 그리스의 겨울여행은 어떤지, 한국은 여행하기 좋은 곳이다 - 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Bölti로 내려갔다.
 “근데 방이 있는지 모르겠네. 오늘은 금요일이잖아. 8월 말의 주말에 아이슬란드에서 숙소 구하기가 쉽지 않지.”
 “헉. 정말? 나 여기 아니면 갈 데가 없는데. 산에서 잘 수도 없고.”
 난 날짜와 시간만 체크해서, 그제서야 오늘이 금요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여행을 할 때는 요일을 체크하는 것도 아주 중요하다는 걸 몰랐다.) 덜컥 겁이 났다. 버스도 없는데.

 Bölti는 조용하고 옛스러운 게스트하우스였다. 산 중턱에 있어서 숙소 앞 벤치에 앉으면 광활한 아이슬란드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지금 그게 내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한 남자가 나올 채비를 하고 있다. “체크인 할 때 물어보니 오늘 overbooking 됐다는데, 자리가 있을까?” 라며 안에 있는 할머니에게 물어보란다.
 볼 살과 턱살이 얼마나 늘어질 수 있는지 경쟁을 하는 건 아닐까 할 정도로 늙은 할머니가 황당하다는 듯이 예약도 없이 왔냐고 한다. 나는 얼굴이 빨개져 숙소가 아니라 어디든 괜찮다며, 누울 수 있는 곳이면 식당 방바닥도 좋다고 사정했다.
 “그럼 여기서 잘래?”
 하면서 구슬들이 달린 발을 치우니 서재가 나온다. 벽에는 몇 대에 걸친 사람들의 사진을 비롯해 흑백사진들이 걸려있고 책장에는 낡은 카메라와 담뱃대 같은 것들이 놓여있는, 영화에서 보던 바로 그런 서재였다. 큰 배낭을 메고 들어가다가 선반에 놓여있는 나무 모형들을 우르르 쏟아트렸다.
 “어휴. 진정해.”
 혹시나 기분을 상하게 해 쫓겨날까봐 나는 당황해 주저앉아 모형들을 다시 조립해 올려놓았다. 서재는 더럽고 매트도 없지만, 카펫이 깔려있어 냉기가 심하진 않을 것 같았다.
 “아 너무 좋아요. 저한테는 완벽한 곳이에요!”
 할머니는 아부라고 생각했겠지만, 나에겐 정말 그랬다.
 짐을 풀고, 어제 덮고 잤던 담요를 펼쳐놓고 또 오늘 밤 얼마나 추위에 떨까 걱정이 들었다. 침낭을 사야 되는데, 그럴만한 곳이 없다. 그래도 괜찮다. 침낭은 없어도 오늘 잘 곳이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하다.


 밖에 나오니 Bölti에 안내해준 그리스 여자가 친구와 함께 테이블에 앉아있다. 엑스트라 자리를 만들어 줬다고 하니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굿-’ 이라고 미소 짓는다. 근처에 뭔가를 살 곳은 전혀 없다 길래 (당연하다. 여기 아이슬란드 산 중턱이다!) 다시 국립공원 입구까지 터덜터덜 내려갔다. 아까 그리스 여자가 Bölti에 간다니 ‘여기까지 픽업 해 줄 텐데?’ 라고 해서 픽업이라니 무슨 말이지? 싶었는데 알고 보니 내가 온 반대쪽으로 차가 Bölti까지 올라올 수 있게 닦여진 길이 있었다. 등반하면서 올라온 거리의 반도 안 되는 짧은 길을 타박타박 내려와, Skaftafell 인포메이션 센터로 4시간만에 다시 돌아왔다. 선택의 폭이 높지 않아 오늘 저녁과 내일 아침으로 먹을 샌드위치를 사고, 아까 Bölti로 안내해준 친구와 그녀의 동료에게 줄 초코바를 두 개 샀다.

 아까 등산할 때는 숙소를 구해야 한다는 압박에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는데, Skaftafell은 아이슬란드의 지형적인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는 곳이었다. 초입으로부터 1/3 지점까지는 낮은 수풀과 잡목, 바위들이 있는 아이슬란드 평야 특유의 지형이라면, 일정거리 이상은 빙하로 뒤덮혀 있다. 산 중턱에서 땅을 내려다보면 검은 흙이 만들어내는 지옥 같은 고요한 풍경이 기분을 묘하게 하고, 산을 바라보면 수풀들 너머로 하얀 빙하가 보인다. 빙하가 있는 곳까지 가보고 싶었지만 10시간 이상 걸리는 코스인데다가 투어를 활용하지 않는 이상 내 장비(신발이나 옷, 고글과 같은 도구들)의 한계로 불가능할 것 같아서 포기했다. 검은 모래밭과 빙하, 고요함과 황량함과 같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풍경들이 이루는 조화에 새삼스럽게 감탄하면서 다시 Bölti로 올라왔다.
 숙소 앞의 벤치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스 친구에서 초코바를 줘야 되는데, 다들 밥을 먹으러 방으로 들어 갔나보다. 방마다 노크하고 그 친구가 있는지 확인 할 수도 없어 일단은 그냥 내 방으로 들어갔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바게트 샌드위치를 우적거리면서 방바닥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헌데 아이슬란드 출발 전까지 아무렇지도 않던 컴퓨터가 시스템을 찾을 수 없다며 에러 메세지를 계속 띄우는 것이다. Skaftafell의 험난한 등산과정에서 충격을 받은 걸까? 4개월의 여행을 생각해서 무겁지만 들고 온 노트북인데 2일 만에 먹통이니 갑갑했다. 작동도 되지 않는 고물 기계를 들고 4개월 동안 여행 할 순 없으니까. 잠시 뒤에 시도해보니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컴퓨터가 다시 잘 작동해서 그동안의 지출을 정리했다. 어떤 식으로 엑셀 표를 만들어야 한눈에 잘 들어올까, 이런 걸 고민하다 시간을 보내고 너무 피곤해서 잠시만 쉬어야지- 하던 게 저녁 9시부터 아침나절까지 잠들었다. 춥고 딱딱한 방에서 조금이라도 더 따뜻하게 자려고 잔뜩 웅크렸다. 창을 흔드는 바람을 빼고는 모든 것이 고요한 숲속의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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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orldofddanj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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