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노로 떠나면서

로드무비 2010. 12. 13. 09:25 |

 일상에 치여, 여행 이야기를 다 정리하지도 못한 채 벌써 일년이 지났다. 차례대로 영국, 파리, 스페인의 이야기를 적고 싶지만- 사실 이 게으른 여행기가 언제 완성될 수 있을 지 나도 잘 모르겠다. 아무리 늦더라도, 이 이야기가 여행기가 아닌 역사기록이 될지라도, 정리해 낼 마음이다. 다만, 처음부터 쓰고 싶었던 까미노에 대한 이야기는 올해가 가기 전에 정리하고 싶다고 요즈음 계속 생각했다. 감정의 흐름 없이 점프해서 쓰게 된 것은 아쉽지만.
 매일 걷기가 끝나면 알베르게(숙소)에서 다이어리에 그날의 생각들을 적었다. 그것들을 옮기는 작업이 될 것 같다. 정리할 생각들과 돌아볼 마음들이 너무 사적이라 부끄러울지도 모르지만, 최대한 솔직하게. 나에게 여행다운 여행이라고 할 만한 가장 생생한 경험들을 그대로. 아, 두근거린다. 물에 젖은 2009년 몰스킨을 꺼내서 훑어보는 것 만으로 다시 까미노를 걷는 것만 같다. 나는 그때 진짜 살아있다고 생각했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갑자기 그 길이 가능성을 열어 보였을 때
그러나 나는 준비가 부족해서 두려웠어.
성공이나 실패가 분명한 길 처럼 보였고,
나는 실패가 두려웠던거야.

한마디로 나는 준비를 해서 실패로부터 먼 선택들을 해 왔거든.
실패할 수 있는 일들을 멀리 했다는 게 솔직한 말일지도 몰라.
심지어 여행을 할 때 조차도 말이지.

하지만 이번에는
선택 너머의 실패가 두려워서 선택에서부터 물러서고 싶지 않았어.
그리고 여행을 하면서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는게 실패가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으니까.

그러니까 처참하게 돌아온다고 해도,
혹여나 그런 소식을 듣더라도 계속 내 친구가 되어줘.


2009.11.08 PM08:59


Posted by worldofddanj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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