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디자인 페스티벌 2/2

 런던 거리에서 녹초가 되길 3일째. Central을 구경하는 날이었는데, 아예 처음부터 디자인 페스티벌을 보겠다는 마음은 없었다. 뭐, 보게 되면 좋겠지만 난 아마 또 길을 잃을거야, SOHO 구경이나 해야겠다 라고 생각했다. 남들이 런던을 여행하면 첫 날에 들렀을 Piccadilly Circus를 한 달 만에 처음으로 가 봤다. 관광객과 기념품샵을 헤치고 길을 따라 올라가면서 구석구석의 오래된 책가게, 디자인 숍 등을 둘러봤다.
 멋진 브랜드들의 큰 숍들이 많았는데 나의 마음을 가장 잡아 끈 것은 ‘National Geography London Store’였다. 한마디로 대박. 여행자의 마음을 훔쳐가는 각종 물품들- 배낭과 여행용 옷들, 다이어리와 오지의 지역생산품, 동물 인형과 사진까지... 한마디로 입이 떡 벌어지는 곳이었다. 오지의 차를 마셔볼 수 있는 카페도 있었는데 듬직한 나무테이블도 정말 탐났다. 한마디로 여행자의 로망을 일백프로 채워주는 곳이었다. 영하의 환경을 체험해 볼 수 있는 부스도 있어서 점원을 졸라 들어가봤다. 옷을 고르던 커플이 신기하게 쳐다보길래 인사해주니 남자가 자기도 들어가보겠단다. 홀린 듯한 표정으로 한참을 돌아다녔다. 사실 Bath에 트래킹을 하러 갔다 온 것도, 런던에 눌러 앉으면서 이게 여행인가, 하는 마음이 있어서였는데 여기에 오니 마음이 두근두근거리는게 당장 도시가 아닌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졌다. 사실 새로운 곳에 대한 갈증이 있어서 원래 계획을 틀어서 아프리카 Morocco나 Tunisia에 가려고 이것저것 알아보고 있었는데, 여기를 방문하고 모로코에 가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리고 이 때는 상상도 못 했지만, 결국 또 다른 선택으로 인해 모로코에 못 가게 되었다.)




 ‘National Geography London Store’을 나와 기분 좋게 거리를 걷다가, Piccadilly Market에 들렀다. 교회 앞 작은 마당을 활용한 flea market이었는데 아주 조그만 주말시장 같은 분위기라 포토벨로 마켓이나 캠든마켓보다 덜 집요하고 여유 있는 사람들이 좋았다. 만화경에 관심을 보이자 아가씨가 만화경 사용방법을 알려주더니 내가 만화경으로 바라보자 브이자를 그리며 웃어준다. 살까 했지만 사이즈나 가격을 보고 여행의 초반이라 포기했다. 입구 쪽에서 오래된 전화기와 나침반들을 팔고 있었는데, 여행의 로망은 나침반이지! 라는 마음에 한참 저울질 한 끝에 나침반 하나를 골랐다. 무려 13파운드. 적당히 낡아 보이지만 낡은 척 하는 최근의 생산품이라는 걸 안다. 할인은 전혀 안 된다면서 보증서와 가게정보가 담긴 종이를 상자에 담아 주었다. 여행 내내 전~혀 쓸 일이 없긴 했지만 기분이 좋아져 헤벌쭉 SOHO를 돌아다녔다.


 "Do>"이라는 디자인 셀렉트 숍에서는 다양한 제품들이 재미있었다. Gijs Bakker의 ‘Water Droplet Fruit Bowl’(물방울이 떨어지는 모습을 형상화한 과일 놓는 그릇)처럼 익숙한 컨셉이지만 마감이 좋은 제품을 눈으로 보는 것도 신선했고, officeoriginair의 ‘Ice Carefe’(물을 조금만 넣어 누워놓으면 알아서 작은 얼음조각이 생겨서, 물을 넣으면 시원하게 마실 수 있는 병)처럼 탄성이라는 소재의 특성을 활용한 제품도 좋았다. 주방용품들에서, Damian Evans의 ‘Index Chopping Board’는 음식의 종류에 따라 다른 도마를 선택해 쓸 수 있는 제품은 실용성에 탄성이 났다. (실제로 음식이 섞이면서 도마가 더러워지는 일이 많으니까-) 사실 굉장히 유명한 제품인 것 같다. Anthracite의 ‘Apron with Oven Mitts’는 앞치마의 아래쪽이 두 개로 갈라지면서, 그것이 두껍게 처리된 오븐장갑이 되는 디자인인데 디테일들이 좋았다. 마지막으로 인상적이었던 것은 scolor changing umbrella (이름 불확실)인데, 물이 묻으면 하얀 부분의 색이 화려한 색으로 바뀌는 우산이었다. 제품이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pH가 낮을수록 색이 탁해지거나, 중성에 가까울수록 색이 예쁘게 살아나는 화학작용이 가능한 소재를 찾아 이 우산에 적용하면 더 의미 있는 디자인 제품이 될 것 같았다. 

Gijs Bakker ‘Water Droplet Fruit Bowl’
© Gijs Bakker

officeoriginair, ‘Ice Carefel’
© officeoriginair

Damian Evans, ‘Index Chopping Board’
© Damian Evans

Anthracite, ‘Apron with Oven Mitts’
© Anthracite

Color Changing Umbrella 
© BLTD LLC, 2010

 Kingly Court Carnaby라는 쌈지길 같은 건물의 디자인/패션/음식 컴플렉스도 있었는데, 여기에서 본 matchstickgarden 이라는 작은 소품이 눈길을 끌었다. 성냥갑을 열면 종이성냥이 들어있는데 성냥머리부분에 꽃씨가 있어 땅에 성냥을 심으면 풀이 나는 컨셉의 제품이었다.

matchstickgarden
© www.matchstickgarden.com
 


 마지막 대미를 장식한 건 Hamleys라는 아이들 장난감과 놀이기구를 파는 가게. 한 건물에 층별로 유아, 여자아이, 남자아이, 피규어 등 다른 컨셉의 장난감들이 꽉꽉 들어차 있었다. 아이들은 여기에서 오픈된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오는 사람들 앞에서 장난감을 시연해 보이는 직원들도 있었다. 봉제인형부터 바비, 움직이는 조립품과 섬세한 모형/피규어까지.. 특히 사파리의 동물들이 섬세하게 조각된 피규어들은, 세트로 모아 기린가족을 만들거나, 미어캣을 일렬로 늘어놓고 싶어 지름신을 떨치느라 고생 좀 했다. 한마디로 아이들의 천국, 혹은 키덜트들의 세상! 멋졌다. 이런 곳에서 장난감들을 고르며 상상의 날개를 펼쳤을 아이들의 세상은, 시작부터 다른 거다. 진심으로 부러웠다.

Posted by worldofddanji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