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 년 만에 찾은 광주터미널은 여전히 공항을 연상시켰다. 커다란 유리를 통해 들어오는 빛은 맨들맨들한 대리석 바닥에 반사되고, 사람들은 분주하게 돌아다닌다. 센트럴고속터미널이 수더분한 어른들의 공간이라면, 광주터미널은 젊고 바쁜 회사원들의 공간이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드는 것일까.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졸업작품 심사를 끝내고 마음이 허했다. 아이디어를 내서 작품을 구체화 하는 과정은 지난했고 스트레스도 많았다. 하지만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과 내 손으로 만들어 가는 목업들이 주었던 어떤 열기를 통해 행복을 느끼고 위로도 많이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그것이 끝나버린 순간 - 적어도 지난 사 년간 막연하게 어떤 매듭이라고 생각했던 -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막막해졌다. 더듬더듬 지난 감흥들을 되짚어가며 곧 끝나버릴 것들과 헤어질 사람들이 자꾸만 그리워졌다. 졸업작품에 매달리던 시간이 끝나버리니, 너무 많은 자유시간 속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그대로 고여버렸다.
 더불어, 어떤 질투심도 생겨났다. 졸업심사 이후 열 개 정도의 작품이 100퍼센트 디자인 도쿄 전시에 출품될 예정이었다. 내 작품의 못난 점과 부족한 점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낳은 작품에 대한 애정 내지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그 리스트에 포함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허탈함이나 섭섭함이 있었다. 누구 혹은 무엇을 향한 감정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잘 다녀오라고 들뜬 친구들을 보내고 아무도 오지 않는 졸전방에서 그 친구들이 섭섭다가 잘 하고 왔으면 좋겠다가 그립다가 내 작품이 못나 보이다를 반복했다.
 어쩌면 그것은 내가 그 동안 언제나 주류 혹은 이편에 있어왔기 때문에 느끼지 못했던 저편의 박탈감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우수하거나 안전한 쪽에 있었던 내가 배려하지 못했던 것들과 사람들. 모든 사람이 우승자가 될 수는 없다. 그리고 우승자가 되지 못했다는 것이 패배자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여기에 남겨져 이런 생각들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나에게도 의미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안에서 땡강 피우는 아이를 달래지 못했었다.
 공항 같은 광주터미널에서 지금쯤 전시를 하고 있을 친구들을 떠올렸고, 나는 이번 여행에서 이 애잔함이나 어린 마음들을 정리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호빵 하나와 물로 허기를 채우고 정신 없이 자다가 광주에 도착한 것이 오전 아홉 시, H와 나는 경쟁적으로 거나한 상을 차려주는 터미널 푸드코트에서 밥을 먹고 담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H가 계획한 여행이라 나는 여행지에 대해 정보가 거의 없었다. 소나무가 많은 절이겠거니, 했던 죽녹원은 절이 아니라 생각보다 크고 유명한 정원이었다. 빽빽하게 솟은 대나무 사이로 철학자의 길, 운수대통 길, 선비의 길 등 멋들어진 이름의 코스가 이어졌다. 발길 가는 데로, 길 열려있는 데로 천천히 걸으면서 나무 보고, 하늘 보고, 흙 길 보는 여유에 마음이 너그러워졌다.
 



초입에 대나무를 이용해 만든 기념품들을 보고, 우리가 일본에 가 있는 친구들에게 광주 여행 기념품을 사 주자! 라고 모의하고 누구에겐 어떤 선물이 좋을까 궁리하며 구경했다. 나도 여행했다고, 선물 주면서 나는 이만큼 큰 사람이라고 증명하고 싶었던 게 솔직한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처음부터 H와 여행을 계획한 것은 아니었다. 혼자 7번국도를 걸으며 마음을 달랠 여행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 확정적인 모든 것들은 지루하다. 하지만 알 수 없는 미래라면 내기를 걸어도 좋다. 새로운 세기랄까, 그런 것이 없다고 하더라도 나는 충분히 내기를 걸 수 있다. 매혹적인 것들은 아직 오지 않은 것들이며 이미 온 것들은 지루하다. 우리는 이제 어른이 되고 우리가 그렇게 되고 싶어하지 않았던 어떤 것으로 바뀌어가겠지. 그러면 자신의 모습에 많이 슬프겠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속에서 희망을 찾는 자들이 불행한 것은 이제 과거는 우리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거는 내 푸르렀던 스무 살 그 무렵의 나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7번국도는 아직 오지 않았던 것, 내가 바로 지금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 내게 매혹을 던져주는 것이었다. "
김연수, 7번 국도 中

 여행을 준비하는 중에 Y형에게 실수를 한 뒤에 그 일에 계속 마음을 쓰다가 여행이 하루 이틀 흐지부지 미뤄졌다. 처음에 7번 국도 여행을 생각했을 때 나는 한없이 걸으면서 혼자 고여있는 감정의 바닥까지 갔다가 와야겠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실수를 계기로 여행이고 뭐고 옆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복잡한 일을 다 말해 무엇하랴만은, 결과적으로 나는 사람에게 기대고 싶다고 마음을 바꿨다. 지나간 시간들과 사람들에 아쉬워하지 말고, 지금 함께 할 수 있는 시간 동안 사람들과 함께 이 감정을 건너가자고. 그래서 함께 여행을 가자고 Y형에게 졸라댔고 혼자 광주여행을 계획했던 H의 일정에 무임승차하기로 했다. 그가 여행을 준비하면서 머릿속에 그렸던 여행의 느낌을 내가 흩뜨리는 것은 아닐까 미안했지만, 괜찮지? 응? 뻔뻔하게 되물어가며 함께 여행을 가기로 했다. 그러나 여행 당일 몸이 안 좋은 Y형은 학교에 남기로 했다.


 죽녹원 앞으로 담양천이 흐르고, 관방제림이 메타세콰이어길까지 이어졌다. 널찍하게 잘 닦인 길을 따라 걸었는데 모든 나무에 식별번호가 이름표처럼 달려있었고 정갈하게 정리된 길이 마음에 들었다. 너무 인공적이지도, 소란스럽지도 않은 길이 좋아서 천변으로는 내려가보지도 않고 제방을 따라 걸었다. 
 죽녹원에서 관방제림으로 이어지는 길에 있던 지도를 보니 오른쪽으로 활터가 있다. 혹시 활을 쏴 볼 수 있나? 한 분이 활을 쏘고 있길래 한번 내려가서 물어나 보자, 하고 활터로 내려갔다. 우리는 돈 얼마 내고 공을 쳐 보는 야구연습장을 생각했지만 이 곳은 전문적으로 활을 쏘는 분들의 공간이었다. 활을 쏴 볼 수 있냐는 우리의 말에 허허 웃으시더니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한번 해 보라며 초등학생들이 쓰는 활과 화살을 내어주셨다.


 휘- 하고 날아가는 화살이 그렇게 시원한 줄은 정말 몰랐다. 줄을 놓자마자 시야에서 사라졌다가 멀리 하늘에서 포물선을 가르며 날아가는 화살을 보니 마음이 뻥 뚫리는 것만 같았다. 어깨너비로 왼발을 앞쪽으로 해서 벌리고, 활을 잡은 왼손은 손목을 약간 꺾어 놓은 실이 팔을 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검지와 중지로 실을 당겨 높게 쏘아 올린다. 두 발을 그럴싸하게 쏘고 마음이 풀어지자마자 자세가 흐트러져 줄이 팔을 때렸다. 집중해야 한다는 아저씨의 날카로운 지적에, 마음이 뜨끔했다. 일단 활을 쏘기 위해 올랐으면 다섯 발을 쏴야 한다는 말씀이나 자신이 쏜 화살을 직접 주어 놓아야 한다는 간단한 규칙에서도 어떤 마음가짐이 전해지는 것 같아 고개가 끄덕여졌다.


 H는 거기에 계신 아저씨들 눈빛이 완전 매섭더라고 혀를 내둘렀다. 나는 사실, 아저씨 눈은커녕 얼굴도 기억하지 못했다. H는 처음 산디과 수업을 들을 때 같이 프로젝트를 했던 친구였고, 영상제작에 대한 관심도 많아서 2학년 때 만든 단편의 후보정 작업도 도와줬다. 하지만 이번 학기 같이 졸업작품을 하면서 알던 것보다 더 깊이와 매력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새로 깨달았다. 내가 흐릿하게 풍경을 보고 지나간다면 사람의 눈빛을 보고 인물을 집어낼 수 있는 시선을 가진 친구였다. 우리는 활을 쏴 본 흥분과, 서로 영화를 만들던 경험들을 이야기하면서 - 돌아가서 영화 좀 만들어보자며 가을 길을 걸었다.


 메타세콰이어길은 - 사실 그렇게 인상에 남지 않았다. 오히려 길의 시작부분부터 걷기 위해 옆으로 난 밭길을 걸으며 본 풍경이나 갈대가 더 마음을 잡았다. 커다랗게 뚫린 메타세콰이어길은 시원하고 아름다웠지만 생각보다 짧았다. 무엇보다 인공적으로 한쪽을 막아버린 벽이 부담스러웠다. 우리는 메타세콰이어길을 찾은 아주머니들의 등산복을 보며 화려한 핑크, 빨강, 검정, 노랑과 보라에 압도당했다. 저 도발적인 칼라팔레트를 보라. 감탄하며 차도 가장자리를 따라 담양시내까지 걸어갔다.



 일전에 광주디자인비엔날레를 보러 왔을 때 소쇄원에 가려고 했다가 버스편이 불편해 포기했었는데 이번에도 쉽지 않았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소쇄원 행 225번 버스를 기다리며, H는 (잠시) 끊은 담배를 미칠 듯이 그리워했다. 소쇄원에 문의한 결과 한 시간은 기다려야 다음 버스가 올 것 같다는 결론이 나 근처 홈플러스 서점에서 책을 보며 몸을 녹였다. 서점에서 꺼내 본 책에 의하면 소쇄원은 자연을 그대로 껴안으면서 공간을 만든 것으로 유명하고, 양산보는 소쇄원을 가리켜 "절대로 남에게 팔지 말 것이며, 하나라도 상함이 없게 할 것이며, 어리석은 후손에게는 물려주지도 말라"고 했다고 한다. 우리는 거의 한 시간 반을 기다렸던 225번 버스를 드디어 잡아타고 (알고 보니 우리가 버스를 기다렸던 3시에는 버스가 없다고 한다.) 소쇄원으로 가면서 '얼마나 아름다운 곳이길래, 얼마나 숨겨놓고 싶은 곳이길래!' 기대를 쌓았다.

 광주호를 끼고 지는 해가 쏟아내는 빛도 아름다웠다. 차를 타고 왔으면 멈춰서 조금 구경할 수 있었을 텐데. 우리는 소쇄원에 도착했고, 곧 이 보석 같은 공간이 사이즈 면에서도 보석과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실개천의 흐름을 막지 않도록 공중에 뜬 담 이라던지, 산의 지형을 보존하며 집을 지어낸 것은 소박한 매력이 있었지만, 두 시간을 기다려 온 우리의 마음에는 차지 않았다. 너무 많은 이야기와 너무 많은 기대가 있었나 보다. 소쇄원에 대한 실망이라기보다는 내 마음에서 쌓은 생각들이 주는 배반에 허탈했다. 소쇄원 뒤로 난 길을 산책하며 여기에서 멧돼지가 나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라거나 사유지에 들어갔다가 살인마를 만나면 우리는 죽는다 하는 시덥잖은 이야기를 나누다 돌아왔다. 양산보가 하늘에서 굽어보고 어이없어 했을 것이다.






 친절하신 소쇄원 직원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광주시내로 나왔다. 깨끗한 터미널, 소박한 담양과 달리 광주시내는 대전보다 더 번화가였다. 서구식 입맛을 자랑하는 H의 의견으로 돈까스와 오므라이스를 먹고, 주인 아주머니 도움을 받아 경신여고 근처 '아주좋다는' 찜질방에 갔다. 나는 개인적으로 찜질방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찜질방을 이용하는 것은 여행을 갔을 때 혹은 영화제 구경을 갔을 때 뿐인데 많은 사람들이 넓은 바닥에 같은 옷을 입고 누워있는 모습을 보며 매번 당혹감을 느꼈다. 편한 집을 놔두고 왜 이런 곳에 놀러 오는 것일까, 재난영화의 한 장면 같은 곳에서 나는 어쩔 줄 몰라 너무 뜨거운 방바닥이나 너무 갑갑한 공기에 힘들어 했었다.
 나는 늘 탕에서 몸을 녹이고 때를 민 뒤에 - 수면실에 가서 잔다, 라는 패턴으로 찜질방을 이용했는데 H는 이런 나에게 찜질방의 새로운 차원 - 찜질 - 을 소개해 주었다. 이렇게 문장으로 적어놓고 보니 모순되는 것 같지만, 나는 '찜질'방 이라는 이름의 의미를 몰랐다. 수면실 한 켠의 방들을 보면서 밖에서 자기 불편한 사람들이 저 동굴에서 자는가 보다 라고 생각했었다. 나야 여행을 마치고 늦게 들어와 씻고 잠만 잤지만 사실 사람들은 가볍게 씻고 이렇게 찜질방에서 땀을 빼면서 놀고 식혜도 먹는다는 사실을 배웠다. 아, 내가 그 동안 찜질방을 잘 못 알고 있었구나. 하지만 누구도 나에게 올바른 찜질방의 정의와 사용방법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는걸, 변호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세상에는 누가 알려주지 않으면서도 누구나 안다고 생각하고 넘어가는 일이 너무 많다. 예를 들어 찜질방에서는 탕에서 몸을 풀고 나서 찜질방으로 올라가 찜질을 한 뒤에 다시 내려와 탕에서 씻고 올라가서 자야 된다 라거나.


다음날은 광주비엔날레를 보기로 했다. 걸어서 도착한 비엔날레는 생각보다 작았고, 생각보다 많은 단체관람객(겁 없는 청춘들이여!)들이 있었다. '4시간이면 다 볼 수 있을까?'라는 말에 농담처럼 '우리가 다 볼 수 없을 만큼 컸으면 좋겠어'라고 말했는데, 전시규모가 크다기보다는 미디어아트가 많아 감상시간이 길었다. 헐-소리가 절로 나는 난해한 작품부터 양으로 승부하는 설치물까지 다양했다. 그 중에 관람객이 이야기의 네러티브로 직접 들어가는 구성의 작품들이 가장 마음에 들었는데, Mike Kelley의 Rose Hobart II(2002)의 경우 영화 '포커스'에서 샤워실을 훔쳐보는 영상을 느리게 틀어놓고, 관객이 굴에 기어들어가 작게 난 구멍을 통해 그 장면을 다시 관음 하도록 유도했다. Gustav Metzger의 Historic Photographs 는 사진을 경험하도록 유도하는데, 대학살의 순간 땅을 기었던 사람들의 사진을 땅에 전시하고 노란 천을 덮어서 작품을 보기 위해서는 관객이 그 안으로 들어가 사진 위를 기어다니며 사진 속 피사체의 절망을 체험하게 한다. 
 Sturtevant의 Warhol Flowers (1990)는 워홀의 작업프린트를 빌려와 같은 방식으로 찍어낸 작품이다. 워홀이 공장에서 직원을 시켜 작품을 만들기도 했는데, 그렇다면 워홀의 재료를 가져와 스터트번트가 찍어낸 이 작품은 워홀의 것인가 스터트번트의 것인가? 복제된 예술품에 대한 농담이 재미있었다. 은빛 가루의 소재감이 인상적이었던 Jacob Kassay의 Untitled(2009) 이나, 전쟁증후군과 가상현실프로그램을 더블스크린에 영사한 Harun Farocki의 Immersion(2010)도 좋았다.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현대미술 중에 "양으로 승부-그래 니 똥 굵다" 분야가 있다. 엄청나게 많은 것들을 모아서, 그게 그 작품의 유일한 가치인 것, 그 분량에 압도되어 이것이 예술이구나 싶은 그런 작품들. 한쪽 복도를 길다랗게 장식했던 한국 아티스트 집단 '안경점'의 수개월의 기록을 정리한 작품도 거기에 해당되는 줄 알고 발걸음을 빨리 했다. 그러다 글이 눈에 띄어 조금씩 읽기 시작했는데 하나 하나에 담긴 정서나 생각들이 너무 좋았다. 그 중에 우연히 눈에 들어온 글은 나에게 하는 말 같아 옮겨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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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의 68번째 날
 
외로운 밤이다.
 
"죽음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변신뿐이야"
 
진아야 여행가자.
 
여행준비라 생각하고 즐겁게 시작하자.
그리고 진짜 여행
 
우리는 왜 정착하지 못하고,
 
나는 과연 생각하며 살고 있는 것일까
다른 사람의 생각에 기대어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 2010 광주비엔날레, 만인보, 안경점 프로젝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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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생각보다 일찍 관람을 마치고 터미널에서 대전행 버스표를 끊었다. 버스를 기다리며 서점에서 일본에 가 있는 친구들과 졸전방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한 선물을 하나씩 샀다. Y형을 위한 잡지, L을 위한 시집, C형을 위한 만화책... H는 '막걸리기행'을, 나는 H의 추천으로 오래 미뤄뒀던 알랭 드 보통의 '우리는 사랑일까'를 골랐다.





 그 짧은 여행을 한다고 좁았던 마음이 너그러워질까. 이틀 휘휘 돌아다녔다고 나아버릴 마음이었다면 오히려 섭섭했을 것이다. 광주에서 돌아오는 나는 여전히 애잔한 생각과 좁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광주에서 그것들을 다 내려놓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대전으로 돌아가고, 사람들도 일본에서 돌아오고 - 그 사람들의 마음도 어디 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애잔함도 나아지고 있다. 어쩌면 사람들은 그냥 있었는데 나 혼자 모든 것은 끝났다며 마음을 멀리 보냈던 것일지도 모른다. 여행 다녀오길 잘 했다고, 이번에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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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orldofddanj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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