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난 노트북

265,000 2011. 11. 27. 06:24 |
요새 수업에서 하는 작업이 재미있어서, 그냥 넋놓고 작업하다 새벽을 넘어 아침에 자는 일이 많았다. 지난 수요일도 아침 8시까지 작업을 하다가, 10시 반에 있는 수업에 가기 전에 한시간만 자야지, 하고 누웠다가 눈을 떴더니 11시였다. 갈까말까 고민하다가 세수만 하고 후드 눌러쓰고 헐레벌떡 뛰어가는데

어느 순간 가방이 가벼워지는 거 같더니,
맥북프로가,
그대로,
쿵.

기스와 상판 틀어짐을 확인하고 속으로 울면서 일단 수업에 갔는데, 켜보니 화이트가 붉게 표현되고 재부팅하니 반응이 없었다. 샤워도 점심도 잊고 AS센터로 달려갔는데... 모니터가 아예 나갔다고, 수리비 견적이 백삼십이 나왔다. 과제, 작업하던 것들... 별 수 있겠어. 컴퓨터를 맡기고 나오는데 그야말로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최근에 작업비를 위해 돈 아껴쓰고 아르바이트 하고 있었는데 순식간에 백삼십이 깨지고 나니까. 백삼십이면 목표했던 작업비 두밴데.. 집에 전화하기가 너무 송구스러웠다. 하지만 엄마 아빠는 내가 다치지 않았는지 먼저 걱정하시고, 그래 필요하면 고쳐야지, 그리고 생활비 없어서 힘들지, 하고 삼십만원을 붙여주셨다.

밤 새고 난 초겨울 정오에 버스에서 햇살을 느끼며 앉아있자니 마음이 허무했다. 쉽게 그 마음의 인과관계를 정리할 수는 없지만, 나 이외에 탓할 수 없는 사고와, 모으던 돈의 두 배가 사고로 깨져나가는 허무함과, 부모님께 다시 손 벌려야 하는 것, 그리고 그런 자식에게 되려 생활비를 부쳐주시는 부모님의 마음과, 나 즐겁자고 돈 모아 하려고 했던 작업은 또 얼마나 대단하고 중요한 것이었는가 라는 생각과, 어마어마한 돈을 어떻게 모아야 하는지에 대한...

자유롭게, 즐거운 작업을 하면서 살고 싶지만 그보다도, 한 사람의 몫을 하고 싶다. 아직은 의지해도 괜찮을 시기에요,라고 한 선배님이 말씀해 주었지만 사실 앞으로도 길이 잘 보이지 않는 게 사실이다. 학생신분이 끝나면 내가 내 몫을 해 낼 수 있을까? 아니 그럴 거 같지 않다. 내가 꿈꾸는 (자본, 혹은 세상에) 독립적인 형태의 삶이라는 건, 사실 이렇게 부모님한테 의존하는 형태로만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답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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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orldofddanj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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