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떠한 청춘도

265,000 2011. 10. 20. 06:28 |
(너무 옛날이라 어렴풋하지만) <워터 보이즈>는 비디오로 봤다가 영화가 좋아서 뒤늦게 재개봉한 극장에서도 본 영화였다. 일본 특유의 만화적 장면이 가득한 대책없이 밝은 청춘물이라는 것 말고는 잘 기억나지도 않는다. 그런데 한 장면, 마지막 공연을 앞두고 주인공이 친구들에게 '이제 내년이면 우리는 고삼이고 이게 우리 청춘의 마지막 순간일거야. 즐겁게 하자' 라는 요지의 말을 하는 장면은 머리속에 남아있다. 나는 그 장면에서 울컥, 했다. 하이퍼텍나다 극장에 앉아 그 장면을 보면서 울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 나는 과학고 입시를 준비하는 범생이었고, 입시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든 그 뒤로 이어질 삶의 순간들은 다소 뻔하고 예측 가능했다. 나에게 영화 속 그들같은 청춘의 순간은 없는 걸까. 내가 가졌지만 누리지 못하고 있는 무언가가 목에 컥 막혀 답답- 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하지도 못했던 시간들이 기억난다.

이번에 부산영화제에서 본 영화인 <마이 백 페이지>는 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 일본 학생운동 시기에 주인공 사와다가 기자의 입장에서 같은 세대의 사회운동을 그저 바라보게 되면서 느끼는 감정을 다루고 있다. 취재를 위해 잠복하면서 만난 친구들에게 기자의 신분을 속일 수 밖에 없는, 가짜 자신이 부끄러웠던 사와다를 보면서 나는 내 모습을 많이 돌이켜 보았다. 지금 세상에 우리 세대가 말하는 것. 88만원 세대, 청년실업, 등록금 반값요구... 나는 이 세대에 속해있지만 동시에 떨어져 있기도 하다. 그들과 다를 바 없는데 '범생이의 테두리 안'에서 월급받기와 취업을 유예하고 있고, 저렴한 등록금을 받고 있다. 소위 88만원 세대가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나는 고개가 숙여진다. 내가 삶의 고단함이나 시대의 억울함을 말하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가진 입장이 되어버렸다. 자랑하려는 게 아니다. 60~70년대의 일본이나 70~80년대 한국의 사람들은 목숨을 건 투쟁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는 것에 부끄러워했던 정서가 있었다고 알고 있다. 나는 동세대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살아남으려고 노력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럭저럭 편안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 부끄럽다. 사회운동에 마음이 격렬하게 움직이면서도, 기자라는 직업을 쉽게 그만두지 못하고, 자신을 자책하면서도 그대로 살아가는 영화 속 사와다에게 마음이 많이 쓰였다.

오늘 도서관에서 <식스티나인>을 빌린 것은 <마이 백 페이지>의 여운 속에서 한참을 잊고 있던 츠마부키 사토시라는 배우가 떠올라서였다. 밝다고만 기억했던 배우가 어느새 서른이 되어 시대에 흔들리는 인물을 연기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너무 간단하게 그를 '청춘배우'로 정리해 버린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다. 이 영화도 <마이 백 페이지>와 같은 시기, 정확히 1969년을 그리고 있다는 것은 영화가 시작된 뒤에야 깨달았다. <식스티나인>은 밝은 청춘물이지만, 그 시대에 고등학생인 주인공들의 젊음이 시대의 공기와 교차하면서 만들어내는 몇몇 지점들이 묵직하게 다가왔다. 지나치게 낙천적으로 시작한 일이 시대와 충돌하고, 저질렀던 일의 의미를 한참 뒤에야 깨닫는 모습들이 마음에 와 닿았다.

영화속 두 주인공인 켄과 아다마가 해가 질 무렵 하천을 걸으며 "즐겁게 사는게 이기는 거야. 심심한 놈들한테 우리 웃음소릴 신나게 한번 들려주는 거야." 라며 와하하- 웃는 장면이 있다. 그 행복한 장면에서 다시 울컥- 눈물이 났다. 시대에 어떤 방식으로든 마주하면서 빛나는 그들의 모습이 나와 너무 커다란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나는 <워터 보이즈>처럼 세상과 격리된 듯 순수하게 빛나는 청춘에도, <식스티나인>의 시대와 교차하는 청춘의 순간에도 이르지 못했다. 십대에는 내가 누리지 못하는 구김살없는 청춘을 부러워했고, 그 십대가 다 지나 이십대 중반이 되어서야 청춘이 시대를 마주했을 때의 무게감을 알았다. 그러나 시대를 세대의 얼굴로 마주하기에... 이제 나는 세대와 완전히 동화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다. 그렇다면 나의 청춘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나는 어떤 순간들을 놓치고 지나쳤는가. 라는... 슬픈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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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orldofddanj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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