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나 말이 마음보다 먼저 생겨나서 마음을 형성하는가. 불려지지는 않았지만 형태와 기울기를 가진 마음이 글과 말을 통해 선명해지는 것 뿐인가. 아직은 어느 쪽이 맞다고 확신하지 못하고 있고, 계속 주의깊게 살펴보고 싶은 주제다. 그럴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때문에 운세나 별자리 같은 것들을 멀리한다. 나는 그런 것을 믿지 않는다며 거절하고 나서 집에 돌아와서 몰래 나의 정보를 입력해 보곤 한다. 그리고 그런 나의 모순이 불쾌해 최대한 빨리 그 내용을 잊으려고 노력한다.


내 삶에서 가까이에 있는 두 사람이 거의 일년을 넘게 서로 사귀고 있다는 사실을 얼마전에 들었다. 적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 어떻게 그걸 몰랐냐고 웃으며 말했다. 나에게 진작 말해주고 싶었는데 적당한 기회가 없었다는 말을 했다. 너가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어서 그렇지 라는 말도 들었다.


그냥 웃자고, 농담으로, 지나가면서 한 마지막 말이 마음에 계속 남아 무겁다. 나도 내가 사람들에게 별로 관심이 없다는 것을, 지속적이고 따뜻한 시선으로 사람간의 미묘한 거리를 포착하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가깝다면 가까운 사람의 입을 통해 '너는 정말로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할 말이 없어진다. 누가 나에 대해 그렇게 예언한다면, 그 말은 마음보다 먼저 생겨나서 마음을 형성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불려지지 않았을 뿐인 마음이, 나만 모르고 남들은 다 알던 나의 형질이 그제서야 내 귀에 들어선 것 뿐일지도 모른다. 나는 종종 그런 생각들로 인해 사람들 얼굴 보기가 두렵다. <사람들이 나도 모르는 나의 것을 읽어내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사람에 대한 따뜻한 마음과 관찰의 끈기가 없어 영화를 만들거나 소설을 쓸 자질이 없다. 나는 나에게만 관심이 있다. 때로는 나 자신에게도 별다른 관심이 없어, 이 삶이 어느 순간에서 대충 끊나거나 망가져도 상관없을 거라는 생각도 해본다. 사실 이런 생각을 구체적으로 해 본 적은 없다. 다만 지금 이렇게 손끝에서 완성되는 글이 마음보다 먼저 생겨나서 어느새 마음을 형성하고 있다.


기운이 빠진다.




'그날의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방을 기념하며  (0) 2014.03.05
조언을 구하는 사람을 볼 때  (0) 2013.11.29
손글씨  (0) 2013.08.22
Posted by worldofddanjit
:

#

사람들은 자신의 상황과 가치관, 몇가지 선택의 갈래들, 그리고 각각의 선택이 불러오는 걱정을 (글이나 말로) 온전히 전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까? 나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열심히 단어를 골라내 세심하게 문장으로 배열하면 내 삶과 시선을 상대방에게 고스란히 전달할 수 있을거라는 말이 나에게는 지나치게 낙관적이고 로멘틱하게 들린다. 나를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면 상대방은 표면에 드러난 아주 작은 근거들로 결론을 내리고 충고를 할텐데, 그렇게 나온 결론이 다시 나에게 얼마나 맞을지에 대해 나는 아주 회의적이다.


둘째로, 말이나 글로 고민을 표현할 수 있다면 그 고민은 이미 어느 정도 내 안에서 정리되어 있는 것 같다. 추상적이고 다층적인 지점들을 선형적인 문장으로 풀어내는 순간 고민은 평면적으로 변하고 단어는 한 쪽으로 기울어진다. 어느새 열심히 변명하고 있다. 그 변명은 선택을 공정하게 제시하기 위한 노력일 때도 있었지만, 마음은 더 기울었는데 논리가 부족한 것 같아(혹은 타인의 시선이 느껴져) 그 격차를 메꿔보려는 시도일 때가 많았다.



#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거나 '좋아하는 것을 하라' 같은 조언을 싫어한다. 모든 사람이 하고 싶은 것이나 좋아하는 것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닐 뿐더러, 사람마다 선택의 기준은 다른데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삶'을 절대불변의 가치로 두고 다시 사람을 평가하는 것 같아 폭력적으로 들린다.


대학원 진학으로 고민하고 있을 때, 누나는 두가지 옵션을 듣고 조언을 해 주는 대신에 '너가 평소에 선택하는 것들과 같은 흐름에서의 선택'을 하면 좋겠다는 요지의 말을 해줬다. 그게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가치관에 어긋나지 않으면서 적어도 지금의 나에게는 솔직한 선택이라고 느꼈다. 더해서 내가 끝까지 경계했던 것은 이 선택이 '무언가를 증명하기 위한 것'은 아닌가 라는 지점이었다. 증명하기 위해 선택해서 불행해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

어떤 선택에 대한 조언을 구하는 글을 볼 때면, 이 사람이 글을 통해 자신을 상대방에게 잘 전달하고 상대도 최대한 자신의 입장에 서서 고민해 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구나, 라는 인상이 먼저 다가온다. 아름다운 자세이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그날의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람에 관심이 없다.  (1) 2014.02.13
손글씨  (0) 2013.08.22
감추어진 것들이 만들어내는 영향  (3) 2013.07.10
Posted by worldofddanji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