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셉과 키워드

세 개의 학번 2010. 2. 11. 02:49 |
# 2월 8일
 
빈 노트를 펴 놓고 키워드를 적기 시작했다.

소통, 우연한 만남, 취향의 일치, 일상, 길, 기록, 영상, 일기, 기억, 잊혀지는 것, 이련한, 여행, 인연, 오랜 여행, 만남, 우연한, 기쁨, 작은 발견, 오래된, 자아 표현, 어른이 되는, 기회를 잃는, 보통의 존재, 창작자, 만남, 시너지...

어떤 키워드는 크고, 어떤 것들은 작다.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들도 있었고 그것들이 또 다른 키워드를 불러내기도 했다.
전해지는 느낌은 있는데 그게 어떤 실체로 잡혀지지는 않는다.



# 2월 7일

 서울에서 P를 만났다. 사실 졸전에 대한 글들을 쓰기로 마음먹게 된 계기도 P에 있었다. 우리는 점심을 먹고 서점을 둘러봤다. 발등에서 피어오르는 불씨를 끄기에는 너무 이론적인 디자인 서적들을 보다가 여행에 대한 에세이, 건축서적을 거쳐 잡지코너에 도착했다. '트랜드나 아이디어를 얻는 것은, 역시 잡지가 아닐까?' P의 의견은 그랬다. 진실로 그랬다. 지금 나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잘 기술된 이론이나 지난 역사의 정리가 아니라 지금의 자극들이었다. 조금 먼저 도착해 봐 두었던 잡지 두 권과, creative를 다루는 신간 잡지 한 권을 골랐다. 마지막 한 권은 창작에 대한 자극이라기보다는 딴짓에 대한 열망의 선택이었다.

"그게 다야? 좀 더 프로페셔널한, 해외잡지나 그런 건 안 봐?"

 P의 말에 얼굴이 달아오를 정도의 부끄러움을 느꼈다. 사실 산업디자인의 최전선을 보기 위해서 해외잡지를 볼 필요는 없다. 변명할 수도 있다. 많은 작품들을 인터넷으로 볼 수 있고, 한국 잡지에서도 적극적으로 소개되며, 한국의 디자인이 떨어지지도 않는다. 그런 말들을 떠듬떠듬 늘어놓아 P앞에서 나 자신을 변호하기도 했다. 내가 부끄러웠던 것은 해외잡지를 보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산업디자인을 전공으로 이제 졸업작품을 만들 나이가 되었지만 여전히 1,2학년 때의 수준에서 머물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제는 더 넓은 것들을 더 깊은 것들을 탐색해야 할 시점인데 익숙한 것들만 손에 넣고 만족스러워 하고 있었다.
 P는 그런 식으로 나를 긴장시키는 사람이다. 자꾸 나를 돌아보게 하고, 잘못한 것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동시에 나를 엄청나게 허술한 사람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제품을 디자인하는데도 완결된 철학이 들어간다. 하지만 더 큰 스케일의 건축과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주늑이 들면서 동시에 그것을 동경의 눈으로 보게 되는데, 이런 나의 태도는 그녀의 전공이 건축과라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지금은 두 가지에 관심이 있어. 하나는 여행자들을 위한 디자인이야. 장기 여행을 하다보면 매일의 기록을 필요로 할 때가 있는데 사실 그게 쉽지 않거든. 어떤 방식으로든 여행자의 일상을 기록하는 것들에 관심이 가더라. 또 다른 하나는- 내가 새로운 세대를 설정한 거라 설명하기는 어려운데- 경쟁에서 벗어난, 느리게 살아가는, 삶의 반짝임을 찾는- 그런 세대들을 위한 디자인을 하고 싶어. 첨단을 달리는 사람들, 혹은 핸디켑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디자인은 있어도 이들을 위한 디자인은 없는 것 같거든."

 사실 그 두 가지는 나의 '디자인' 이슈라기 보다는 그냥 요즈음 '나'의 이슈에 가까웠다. 우리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이런 아이디어는 어때, 이야기를 하기를 반복했다. 나의 가볍고 사소한 아이디어와 생각들이 오히려 P에게 실망스럽게 다가갈까봐 그게 걱정되기도 했다. P는 마치 교수님과의 크리틱 같다면서 다음에는 발전 된 아이디어를 가져오라고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2월 9일

 학기 초의 과학도서관은 언제나 설레는 뭔가가 있다. 우선 남들이 학기 초의 여유와 유희에 잠겨 있을 때 이 곳을 찾았다는 점에서 주변의 사람들과 알 수 없는 연대감이 형성된다. 그들은 왠지 조금 더 조용하고 사려깊고 진짜 지적인 탐구를 하는 것만 같다. 그런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것 만으로도 좋은 것이다. 사람이 적은 도서관을 헤매면서 읽고 싶었지만 오랫동안 미뤄뒀던 책들을 골라내는 일도 좋아한다. 그 일에는 따뜻한 삶의 태도 같은 것들이 느껴지기까지 한다. 쌓아 두었던 작은 것 하나씩 실천하면서 삶을 구체화 하는 것, 역시 그것이 삶의 올바른 태도이지 라고 생각하면서-
 자리에 앉아 김경욱의 <장국영이 죽었다고?>를 마저 읽었다.'당신의 수상한 근황'을 읽으면서는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 했고, '나비를 위한 알리바이'의 주인공이 안타까웠다. '장미정원의 아름다운 원주민'의 결말에서는 전율이 일었고, '나가사키여 안녕'은 연극배우가 무대에서 감정을 실어 말을 걸어오는 것만 같았다. 실로 오래간만에 보는 한국소설이었고 오래간만에 느끼는 책 읽기의 포만감이었다.

 '나가사키여 안녕'에서 눈이 머무른 구절이 있었다.

스무 살! 스무 살은 인생의 어느 한 시기가 아니라 인생에 붙여진 수많은 이름 중 가장 빛나는 이름이 아닌가 하오.
(나가사키여 안녕, 김경욱)

 나는 이 문장을 읽고 정신이 번쩍,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인생에 이름 붙여진 수 많은 시기 중에 가장 빛나는 어떤 순간이 스무 살이라면 나에게 스무 살은 없었던 것 같다. 별다른 감흥 없이 대전의 공대로 이끌려 왔고, 익숙한 기숙사 생활과 차분한 듯 치열했던 수업들은 '스무 살' 이라는 인생의 이름 값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나의 스무 살은 어디에 있는거지?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두리번 거렸지만, 낡은 밤색 책장과 띄엄띄엄 자리를 차지하고 공부하는 사람들 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찬탄하고 이야기하는 스무 살이 왜일까 전혀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그렇구나. 나에게는 지금 스물 넷이 인생에 붙여진 수많은 이름 중 가장 중요한 어떤 순간일지도 모르겠다. 전혀 다른 세상에 아무런 이물감 없이 편입했던 스무 살은 그 명성에 비해 텅 빈 시간이었다. 2010년 대한민국에서는 졸업, 취업, 직장, 세상으로의 진입을 위한 안밖의 전쟁을 치뤄야 하는 스물 넷이 스무 살의 이름값을 대신 치뤄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스물 넷을 스물 넷 이름 값을 하도록 살아야 한다. 그런 생각들이 불현듯 들었다.



# 12월 2일, 2009년

놓친 것들도 있지만 아직 나는 어리고 가진 가능성도 많다는 것을 안다. 그 가능성을 나의 것들로 바꾸어 삶에 보탠다면.
그러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는 좀 좋게, 멋지게, 잘 살고 싶어졌다.


여행을 하면서 다짐했다. 진짜 나에게 이르는 것들을 하자. 돌아가서 졸업작품을 만들게 된다면 졸업을 위한 작품이 아니라, 나를 표현하는 어떤 것, 나의 의지를 드러내는 어떤 것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2월 9일

 어제 노트에 적었던 키워드들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의미를 내어줄 듯 하면서 어떤 답도 주지 않는다. 나는 디자인을 할 때 그것의 의미와 컨셉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경향이 있다. 처음 산업디자인과에서 조명을 만들었을 때가 떠올랐다. 어떤 친구들처럼 아름다운 조명기구의 조형적인 형태를 위한 실험에 뛰어들지 못했다. 나는 조명기구라는 것, 전구를 끼워 빛을 내는 것, 그 전구를 조명기구 혹은 벽에 돌려 박아넣는 것, 이라는 컨셉을 구체화 할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게 옳고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그렇게 해서 나온 디자인은 마음에 들었지만, 사실 마감 일주일 전까지 아무런 목업이 나오지 않았던 그 프로젝트를 성공적이었다고 하기엔 위험하다는 것을 안다.
 나는 또다시 컨셉과 의미에 집착하고 있나보다. 여행자와 새로운 세대에 대한 관심에, 나를 둘러싸고 있는 키워드들은 컨셉과 의미로 내 머리속에 둥둥 떠다니고 있다. 이전에는 조명기구, 라는 주제가 있어서 그것의 의미를 컨셉으로 연결지으면 됬는데, 이번 졸업작품은 컨셉들을 매어 놓을 어떤 '제품'이라는 주제가 없기 때문에 더욱 모호하다. 운이 나쁘면 이런 생각들의 진창에 빠져 결과물은 나오지 않은 채 시간을 까먹을 거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하지만 당분간은 이 몽롱한 키워드들 - 나의 생각과 의지를 표현하는 어떤 것들 - 을 붙잡아보기로 한다. 이런 것들이 나의 스물 넷을 그 이름에 걸맞는 치열한 결과물로 결실을 맺었으면 좋겠다. 눈치 챘는지 모르겠지만 그 결실이 졸업작품이 아니더라도 괜찮다. 지금의 나는 그런 마음이다.



# 2월 10일

35. 롤랑 바르트는 말한다. 독창성의 진짜 처소는 그 사람도 나 자신도 아닌, 바로 우리의 관계이다. 따라서 빛나는 사랑을 위해 당신이 쟁취해야 하는 것은 그, 혹은 그녀가 아니라 그, 혹은 그녀와의 독창적인 관계이다. 내가 그녀에게서 새로운 매력을 발견했다면 그 매력의 진원지는 그녀가 아니라 그녀와의 관계여야 마땅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그녀와의 관계가 갖는 빛나는 독창성의 정체는 무엇일까. 왜 하필 그녀와의 관계일까. 샤갈의 그림으로 가득 찬 전시실에서 나는 사랑의 본질에 관한 궁극적인 의문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낭만적 서사와 그 적들, 김경욱)

그리하여 지금 남은 키워드는
독창적인 관계, 여행에서의 기록, 우연한 만남.

졸업작품에 대한 아이디어는 글쎄요.



'세 개의 학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업디자인 하는 사람들  (6) 2010.02.22
딴짓 DDanjit  (12) 2010.02.12
학교에 돌아왔다  (6) 2010.02.06
Posted by worldofddanji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