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하면서 사람의 몸에 관심이 갔다. 나는 '지식인 놀이'에 빠져있는 편이었다. 몸이 조금 허술해도 지식을 쌓아 지적으로 멋진 사람이 되자. 그런데 까미노를 걸으면서, 그런 건 떠오르지도 않는다. 일어나자마자 몸의 상태를 점검하고, 빵 하나로 달라진 배낭의 무게에 부담을 느끼는 어깨와 다리의 긴장을 느낀다. 나는 내 몸을 좋아해 본 적이 없다. 싫다는 게 아니라 좋아하고 말고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런데 사람의 몸이 이렇게 대단하구나. 처음 감탄했다.

 몸, 얼굴에 대한 매혹은 어쩌면 너무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육체적인 아름다움에 대해 판단하는 것은 나에게 금기시되는 일에 가까웠다. 일단 내가 그다지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알았고, 그런 내가 외적인 미를 내 잣대로 판단하는게 웃기다고 생각했다. 만약 내가 잘 생겼다고 하더라도 그건 공정하지 않아 보였다. 나는 공정하지 않은 것들이 싫었다. 어린시절의 나는 '공정함'그에 대한 강박이 있었다. 이런 습관들은 나를 소위 '남성적인 사회'의 분위기에서 멀어지게 했고, 어떤 연예인이 예쁘네 누가 좋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뭐랄까, 나에게는 말도 안 되는 일 같았다.

 중학교 국어시간에 알퐁스 도데의 "별"을 읽으면서 나는 이 공정함이라는 단어 때문에 소설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목동이 소녀에 대해 묘사하는 첫 문장은 이렇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가 관심을 쏟는 것은 주인댁 따님, 이 근처 백 리 안에서 가장 어여쁜 스테파네트 아가씨가 어떻게 지내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뭐야, 예뻐서 그런거야? 뒤로 갈수록 점점 가관이었다. "스테파네트 아가씨는 그때까지 한평생 내가 봤던 사람들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었다고."
 대한민국 교과서에 실린 소설이 외모지상주위를 종용하는 소설을 책에 넣어놨구나. 그냥 예뻐서 사랑에 빠진거다. 말 한 마디 나눠보기도 전에 이미 첫사랑. 그 당시 나에게는 조금 공정하지 않은 일 같았다. 불편했다. 만약 목동은 처음에 누가봐도 어여쁜 아가씨에게 약간의 호감이 있었는데, 하룻밤을 함께 보내게 되면서 나눈 대화를 통해 그녀가 얼마나 순수하고 상냥한지 나의 말을 얼마나 잘 들어주는지를 깨닫고 사랑에 빠졌다면 나는 이 소설이 더 마음에 들었을 것 같다. 사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방식이다. 나는 누구의 얼굴이 예쁘고 아니고를 느끼기는 하지만 그게 사랑이라는 감정과 연결되지 않는다. (이건 개인적인 고민의 영역이다.) 나의 '공정함'이라는 단어 때문일지도 모르겠고 그게 그 사람의 표피일 뿐인데, 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사실 외모지상주위에 대한 문제는,
알퐁스 도데의 "별"을 순수한 사랑 이라고 가르친 중학교 교과과정에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외모를 가지고 이야기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신기하다.
누군가의 외모를 보고 사랑에 빠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나에게 가장 기이한 이야기중에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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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orldofddanj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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