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가 다르다' 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영어와 한글'처럼 보여지는 언어의 차이를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표면적으로는 같은 문자를 쓰고 있지만 상황을 해석하는 시각이 다른 경우가 있다. 디자인을 공부하는 친구들끼리만 프로젝트를 진행하다가 경영을 공부하는 사람과 이야기를 해 보면, 같은 주제인데도 전혀 다른 이야기가 나온다. 은연중에 자신의 언어 - 예를들어 디자인이라거나 경영, 공학과 같은 - 로 생각하고 이야기 하기 때문이다. 아, 이렇게 생각을 할 수도 있구나 싶어 재미있기도 하고 내 분야로만 바라보는 좁은 사람이 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런 다른 언어를 가진 사람들의 협업과 그 결과물에 일찍이 관심을 보였던 그룹으로 "MIT Media Lab"이 있다. 내가 MIT Media Lab의 프로젝트들을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지난 인터렉션 수업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예 중의 하나였던 Lover's cup을 본다면 MIT Media Lab 작업의 대락적인 방향을 짐작할 수 있을까? (Lover's Cup 프로젝트 보기) 공학과 예술, 사회를 아우르는 프로젝트들을 보면서, 정말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MIT Media Lab의 한국인 연구원/졸업생들을 중심으로 한국, 서울에서 워크숍을 연다고 해서 냉큼 등록했다. 여행직전이라 시간이 많지 않을 것 같지만, 막연하게 동경했던 MIT Media Lab에서의 작업과정을 배울 수 있다는 특별한 경험에 영상편집도우미와 워크숍 참여자로 나섰다.

MIT Media Lab 소개


MIT Media Lab Sharing Experiences 2009 주제 소개


 사실, 여행 직전이라 준비할 것이 이것저것 많아서 부담이 컸고, 3일 내내 매달려서 워크숍을 진행해야 한다는 사실에 일정이 다가올수록 '괜히 했나'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런데 첫 날, 등록을 하고 참가자들이 함께 모여 3일간 진행될 워크숍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오래간만에 새로운 경험과 배움에 두근거리기까지 했다.
 10일에 컨퍼런스가 있었고, 11일부터 13일까지 동숭동 제로원 디자인 센터에서 워크숍이 진행됬다. 12개의 워크샵 주제에 따라 신청자들은 작은 그룹을 만들었고, 그 그룹 내에서 소그룹이 다시 형성되 서로의 관심사를 교류하고 주제에 맞는 프로젝트를 발전시키는 과정으로 진행되었다.

 나이, 전공 등 그 어떤 제약도 없었기에 공학도와 디자인 전공자를 비롯해 정말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였다. 또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 모인지라 서로의 이력들도 재미있었는데, 예를들어 우리 그룹의 맴버중에는 '찬란한 유산'의 조연출로 활동했던 분도 있었고 단편영화를 찍었던 사람도, 어도비 공모전에서 수상한 디자이너도 있었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토론을 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서, 그 아이디어의 대략적인 기술을 테스트해보는 데모작업이 워크숍의 끝이었다. 둘째날 밤에는 밤을 새면서 센터에서 데모작업을 했다. 우리팀은 Interactive Stories를 주제로 하는 그룹이었는데, 생판 모르던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 3일간 아이디어를 도출해 워킹하는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영상을 제작하고 목업을 진행했다. 짧은 시간에 다른 언어를 가진 사람들과 소통해서 결과물을 내야 하는 것이 '즐거운 스트레스'를 유발했다.
 자신의 분야가 아닌 전문지식이 필요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서로가 자신이 가진 스킬과 도구들을 활용해 워크숍에 참여했고 매일 튜토리얼 시간이 마련되어 프로그래밍부터 목업제작까지 (이 역시 자원봉사자이자 워크숍 참여자들이) 작은 강좌를 열기도 했다. 
 각 팀의 결과는 정말 천차만별이었는데 제품의 제약에 주목한 우산디자인 목업부터 지하철에서의 정보 디자인, 작은 로봇부터 전시회에서의 커뮤니케이션 이벤트를 기획한 팀도 있었다.
 3일간 짧고 굵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피곤하고 벽을 마주하는 상황도 많았지만, 자신과 다른 언어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에 대한 열린 자세와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려는 열정들은 너무 유쾌했다. 아이디어를 작게나마 시연하는 데모와 프리젠테이션들은 15일(토요일) 오후 4시부터 6시, 16일(일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제로원 디자인 센터에서 전시한다. 이틀 내내 Helper들이 전시와 데모를 설명하겠지만, 특히 15일 4시부터 6시까지 열리는 오프닝 리셉션에서는 워크숍에 참가했던 참가자가 직접 데모를 시연하고 프로젝트를 설명한다.

 휴학한지 벌써 반 년이 지났다. 많은 것들, 특히 공부에 지쳐서 그것으로부터 멀리 달아나서 쉬려고 했다. 게임회사에서 인턴십도 하고, 영화제에서 스크리닝도 하면서 '내가 공부하는 것들이 아닌 것들을 하는 나는 누군가의 삶을 잠깐 대리체험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MIT Media Lab Sharing Experiences 2009를 하면서, 학교에서 열정적으로 아이디어를 토해냈던(ㅜ.ㅜ) 시간들이 떠올랐다. 정말 피곤하고 체력적/정신적으로 힘든 일이지만 그 열정적인 시간이 즐거운 것도 사실이다. 또 '내가 잠깐 체험했던 작은 경험들'이 모두 나의 것들이 되어있는 걸 보면서 지난 시간이 의미있었다는 걸 확인할 수도 있었다. (내가 하는 것들이 내 공부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데 작은 스트레스가 있었나보다.) 나와는 다른 경험을 한, 나와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은 정말 멋지다.
3일간의 Sharing Experiences, 혹은 Experiences Sharing.

* 워크숍 결과물 전시
8월 15일 토요일 (오후 4시~시) ~ 8월 16일 일요일 (오전 11시~오후 6시)
오프닝 리셉션 : 8월 15일 토요일 오후 4시 ~ 6시
장소 : 대학로 제로원 디자인 센터 지하 1층 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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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orldofddanj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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