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랍도록 많은 일이 있었다.


힘들게 프로포절을 지나고 방학을 맞이했다. 논문이라는 논리적인 구조를 통해 주장을 객관화시키는 과정이 나에게는 어렵고 낯설다. 생각해보면 산디 학사 졸업작품도, (물론 학사 졸업작품 특유의 느슨하고 관대함이 있긴 하지만) 내가 만든 제품은 현실적으로 아주 불가능하고 그 측면에서의 논리도 매우 희박했다. 논리의 시작과 결과물의 정성으로 넘어갔던 지난번과 이번에 대학원생으로 해내야 하는 논문은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절감한다. 해보면 는다고 하는데 원체 나는 내 삶을 통틀어 무언가를 하면서 늘기보다는 딱 그것만 어떻게 해치우고 나서 전혀 몸에 체화되지 않아 왔다. 다음번에 비슷한 일을 하게 되면 또 처음 하는 일처럼 고되고, 각각의 케이스에서 내가 겪는 마음과 다루는 소재가 다른데 어떻게 노하우라는게 이어질 수 있는지 잘 와 닿지 않기도 하다. 이건 내가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타입의 일이다.


디자이너(앨범 크래딧의 명칭은 '아트워크')로 참여한 가을방학 김재훈의 <실내악 외출> 앨범의 결과물이 나왔다. 이 작업과정에서의 수많은 일과 마음을 막.... 다 적어놓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정도(이 모든 것들을 어찌 다 전하나요)로... 심적 육체적으로 엄청난 작업이었다. 나는 그동안 아르바이트를 제외하고는 개인프로젝트로만 작업을 진행했다. 처음으로 스케일 있는 클라이언트 작업을 하면서, 아 혼자 하는 작업이 정말 쉽고 편했던 거구나 절감했다. 인터뷰 같은 데서 '사람들의 기대와 부담감 때문에 힘들었어요.'라는 말을 볼 때 개인적으로 전혀 와 닿지 않았는데 이번에 작업하면서 아 이런 부담감이구나 라는 것도 느껴봤다. 나도 한 사람의 팬인 입장에서 디스코그라피를 망치는 사람이 될 것이 많이 두려웠다. 엄청나게 많은 시안이 엎어지고 나온 결과물은, 다행히도, 아주 마음에 들고 좋았다. 힘겹게 커버를 결정하고 다음날 '어 저도 그 사진이 커버로 쓰이면 어떨까 싶어 요청하려고 했었어요.'라는 메일을 받았을 때 기분이 묘했다. 모두가 좋아하는 결과물이 있을까 싶었는데 그런 결과물이었고,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 중간에 있었던 모든 시안이 시시하게 느껴질 정도로... 좋았다. 앨범이 나오기까지 한 달 정도는 작업 때문에, 앨범이 나오고 나서는 그 여운 때문에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자가출판으로 시작한 아이슬란드 여행기는 3권이 모두 만들어졌고, 상상마당에서 전시하고 있다. 얼마 전에 책 담은 박스 하나를 정리하면서 계산해봤는데, 1, 2, 3권 각각 300부에 1권 150권을 만들었으니 1,050권을 만들어 800권 가까이 자가출판 서점을 통해 팔았다. 허. 그것참. 신기하다. 자가출판 작업을 하면서 알게 되는 분들, 공간들과 그들의 작업에서 많이 자극을 받는다. 사실 진작에, 파릇파릇한 대학생 시절에 이런 것들을 하고 다녔어야 하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도 좀 들지만ㅎㅎ 가끔 돌아오는 피드백도 재미있고, 800권 되는 책들이 어딘가 누군가의 책장에 놓여있을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기분이 묘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방학 동안 진짜 해야 하는 일은, 논문을 진행하고 진로를 결정하는 일이다. 논문은 한 달 가까이 앨범작업으로 진행을 거의 못 해서 이제 실험을 위한 프로그램을 배워나가는 중이고... 교수님과 몇 번의 미팅 끝에 박사를 지원한다고 말씀드렸다. 사실 아주 솔직하게 말하자면 군대문제를 포함 별다른 옵션이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 랩에서 개인작업과 연구를 병행할 수 있다는 환경도 과분할 정도로 좋다. 다만 이번에 석사논문을 쓰면서 내가 연구를 하고 논문을 써내는 것에 적합한, 혹은 그것을 즐겁게 해낼 수 있는 사람인지 자꾸 의문이 들고 걱정이 들었다. 교수님께서 '박사를 지원한다는 것은 삶의 방향을 연구자로 정하는 것인데, 그런 마음이 되어있는지.' 물으셨는데 (그렇다고 거짓말이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었음에도)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지금 계획하는 데로, 내 작업과 연관된 연구를 통해 두 일이 일치할 수 있다면 박사과정이 보람 있을 거라는 생각이다. 잘 준비해서 붙어야 할 텐데...


써놓고 보니까 앨범작업도 그렇고 박사지원도 그렇고 이런 걸 써도 되나 싶긴 하다. 인터넷의 잊힐 권리에 대해 랩 선배가 논문을 썼는데 갑자기 그것도 생각나고... 지금은 살짝? 풀어진 상태라 서울아트시네마에 영화 보러 다니거나 홍대 책 입고하고 공간에서 놀고 있는데, 다음 주부터는 논문을 바짝 준비해야겠다. 재밌는 작업도 하고. 일과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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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orldofddanj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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