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여행기록 06

로드무비 2011. 2. 4. 19:35 |

1월 6일, Ayuthaya
Ayuthaya는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기 좋다고 소개되어 있어, 하루 종일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햇볕은 뜨거웠지만 바람은 시원했고, 비포장 길을 탈탈거리며 길 위의 풍경들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사원이 한참 지겨워질 즈음, 이름도 잘 모르는 사원을 배경 삼아 나의 자전거를 찍었다.

 
1월 6일, Ayuthaya, Wat Phra Mahathat
론리플래닛에는 사진이 없어서 불편하다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는 사진이 없다는 그 점이 좋다. 많은 여행서적들은 너무나 친절한 고화질의 사진을 담고 있는데, 사진을 보고 그 장소에 가면 실물을 확인하는 것뿐이 아닐까, 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Ayuthaya에 도착해서 짐을 풀었던 게스트하우스의 주인은, 자신이 이 마을의 모든 사원과 멋진 유적들을 보게 해 주겠다며 마을의 유적들을 찍은 엽서를 지도 위에 늘어놓았다. 오! 마이 아이! 나무속에 파묻혀 있다는 석상을 스포일링 당했다. 너무나 친절해서 오히려 불친절했던 그 사람을 뿌리치고 찾아갔던 Wat Phra Mahathat의 석상은, 그래서일까 조금 시시하기까지 했다. 오히려 그 석상을 감싼 채 하늘 높이 솟은 나무의 기백이 더 인상적이었다. 이 사진을 본 누군가가 스포일링이라고 할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죄송하다. 하지만 이 석상을 감싸고 있는 나무, 사진에 담기지 않은 나머지 부분이 오히려 나를 더 감탄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그 부분을 기대하고 가 보았으면 좋겠다고 말해주고 싶다.

 
1월 6일, Ayuthaya, Wat Chai Wattanaram
하지만 적절한 사진이 가이드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나 보다. 원래 Ayuthaya 자전거 여행에 이 사원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지만, 스포일링 아저씨의 사진 덕에 이 아름다운 사원을 알게 되었다. 시내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 매연과 더위, 자동차들의 위협을 헤치고 힘들게 가야만 했지만 그렇게 도착한 Wat Chai Wattanaram는 그 고생을 보상해 줄 만큼 너무나 장엄하고 아름다웠다. 세월의 풍화를 그대로 드러낸 벽돌과 자신의 구조를 반복하며 확장되는 건축형태, 사원만큼이나 오랜 세월 살았을 것 같은 새들이 사원의 높은 구멍에 둥지를 틀고 날아다닌다. 지는 해의 온화하지만 콘트라스트 큰 빛이 만들어내는 사원의 디테일들을 한참 바라보다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책에 의하면, 불과 40년 전만 해도 이 사원은 정글에 숨겨져 있었다고 했다. 여기에서 친구에게 엽서를 한 장 썼다. ‘우리의 삶에서도 숨겨져 있지만 발굴되어 그 아름다움을 뽐낼 무언가가 아직 남아있었으면 좋겠다’고.


1월 6일에서 7일, Ayuthaya에서 Nan으로 가는 버스
버스는 엄청 시원하고 추웠다. 담요와 간식이 제공되었고 나는 음악을 듣다가(너무 일찍 자면 힘들까 봐) 10시쯤 잠들었다. 8시반에 출발한 버스는 5시에 불쑥 Nan에 도착했다. 8시간 반의 이동 중에 나는 자세를 바꾸어가며 자거나, 브로콜리 너마저의 ‘할머니’를 계속 들으며 편찮으신 할머니와 시간에 대해 생각했다. 애교 많거나 마음 많이 쓰는 손자는 아니었지만, 아프신데 예정되어 있다며 여행을 떠나야 했던 나와 태국엔 와 보시지 못했지만 나는 가 볼 수도 없는 시절의 세상을 사셨을 할머니가 갑자기 생각났다. 그리고 이틀 뒤에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나는 이십일이 더 지나서 한국에 돌아와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쉽게 잊혀지나요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쉽게 없던 일이 되나요
수많은 세월이 더 많은 시간으로 덮혀도
변하지 않는 것들, 잊혀지지 않는 다는 건
브로콜리 너마저, 할머니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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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orldofddanj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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