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학기 제품디자인 시스템 수업에서는 LG 산학으로 미래의 차세대 디바이스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스마트폰, 클라우드 컴퓨팅, 증강현실과 같은 기술이 쏟아지는 시대에 우리는 어떤 차세대 커뮤니케이션을 상상할 수 있을까? 어떤 디바이스가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게 될까? 라는 것이 이 과제의 질문이다.
 프로젝트의 진짜 어려운 점은 이 다음에 있다. LG측에서 이 프로젝트의 결과가 '제품'형태로 나왔으면 한다는 것이다. 소프트웨어나 앱이 서비스에 포함되더라도, 결과적으로는 그 소프트웨어를 실행시키는 하드웨어의 이노베이션을 원한다고 했다. 더 나아가서는 작은 악세사리나 부가 하드웨어를 계속 구입하는 구조도 좋겠다고 했다. 프린터를 싼 값에 내놓고 잉크를 비싼 값에 판다거나, 커피머신은 싼 값에 팔되 캡슐을 비싼값에 팔아 지속적인 소비를 유도하는 네스프레소의 사업이 그런 방식이다.

 많은 사람들이 iPhone(으로 대표되는 스마트폰)이 가져다 준 새로운 모바일 커뮤니케이션에 감탄하고 있겠지만, 함께 과제를 풀어나가는 조원들에게는 iPhone이 절대적이자 증오의 제품이 되었다. 한마디로 어떤 새로운 아이디어도 iPhone의 어플리케이션으로 적용이 가능한 형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모바일과 각종 센서, Wi-Fi와 GPS를 갖춘 이 디바이스는 '기기가 가진 센서를 활용한 어떤 소프트웨어도 소화할 수 있다'라는 장점 때문에 역설적으로 새로운 디바이스가 '디바이스 그 자체'로 존재해야 할 이유를 없애고 있다. 재미있는 커뮤니케이션이나 특별한 시장이 있는 서비스라 하더라도, 굳이 그걸 위한 특별한 디바이스를 고안할 필요 없이 iPhone의 앱으로 깔아버리면 되는 것이다. 뭔 아이디어가 나와도 항상 '근데 앱으로 가능하네...' 혹은 '이 디바이스에서 서비스만 추가한 거네...' 라는 말이 후렴구로 따라 붙는다. 
 망할 iPhone! 하지만 N교수님은 우리들이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생각(과 조모임)을 거듭하다 보면 하드웨어 중심의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다고 믿고 계시는 것 같다. (혹은 우리를 믿을 수 밖에 없으신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생각하자 교수님께 조금 죄송하다...) 수업중에 손을 들고 '교수님! 저희에게 그런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있다면 왜 애플사로 가서 아이디어를 팔지 않고 여기에서 조모임을 하고 있겠습니까?' 라고 묻고 싶은 욕구가 솟구치지만, 내가 앞을 내다보는 눈을 가진 디자이너가 아니라서 지금 Apple이 만들어논 오픈앱의 모델을 넘어서는 생각을 못 하는 것이리라고 자책하는 편이 차라리 생산적일 것 같다.


 하지만 여기에서 수업에 대한 한탄을 하려고 글을 쓰는 것은 아니고, 수업을 들으면서 궁극적인 모바일 디바이스는 어떤 형태를 띠게 될까 - 에 대해서 그야말로 순수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정리해 보려고 한다. 내가 이 과제를 수행하면서 계속 의문이 드는 것은 근미래 트렌드를 조사하면서 읽은 책의 한 구절에서 시작됬다.

"모든 디지털 기기들은 단말기가 된다"
"단말기에는 기본 입출력 장치와 인터넷 환경만 있으면 무엇이든 가능해진다."

* 핫트렌드 2010
 
 미래의 어떤 모바일 디바이스를 상상해 보았을 때, 스크린/카메라/보이스/스피커/Wi-Fi/GPS 와 같은 기본 입출력 장치와 인터넷 환경을 뛰어넘는 어떤 것을 가지고 있게 될까? 사실 나는 잘 모르겠다. 지금 이정도의 기술, 혹은 근미래의 3D/증강현실 등을 구현하기 위한 추가적인 입출력 장치 외에 하드웨어적으로 필요한 '센서 혹은 장치'로 무엇이, 얼마나 등장할지.
 그래서 나는 iPad의 등장과 사람들의 반응이 재미있었다. 나에겐, Apple이 iPhone을 통해 모바일 디바이스가 (현재의 기술로) 담아낼 수 있는 거의 모든 하드웨어를 갖춘 기기를 만든 후에 '사이즈의 실험'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iBookStore라는 새로운 시장을 열었지만, 궁극적으로 스크린과 Wi-Fi가 있는 iPhone에서도 가능할 이 서비스가 (즉 굳이 iPad라는 디바이스를 만들어 낼 절대적인 이유는 없는 서비스) iPad의 '사이즈'에 적당하다는 것이 이 제품의 거의 유일한 특징이자 존재의 이유 같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헷갈리기 시작한다. 이것이 iPhone의 뻥튀기 일 뿐이잖아! 라며 비웃는 사람이 있는 한편 편리하게 책도 보고 게임도 하고 프리젠테이션도 할 수 있지 않겠느냐 면서 이 '사이즈'에 맞는 용도를 열심히 찾아 내고 있는 사람도 있다. 사람들이 제품의 용도를 찾는다(혹은 헷갈려한다)는 것, 그리고 Apple도 이 제품이 정확히 '뭘 하는 건지' 명확히 설명하지 못하는 것은 디바이스간의 경계가 무너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iPad는 노트북도 스마트폰도 TV나 게임기도 아니고 그냥 그런 제품들의 요소들을 모두 가지고 있는 또 다른 '디바이스'이기 때문이다.

 iPad가 소개되고 얼마 되지 않아, 재미있는 패러디 영상이 올라왔다.



 영상을 보면서 웃었지만, 동시에 생각할 덩어리가 있었다. 이 영상이 패러디 한 대로, 미래의 모바일 디바이스는 궁극적으로 '노트'처럼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해봤다. 노트란 기본적으로 (종이의 질은 어떤가, 줄이 그어져 있는가 등의 세부적인 차이는 있기는 하지만,) 종이의 묶음이다. 거기에 무엇이든 해도 좋다. 우리가 노트를 구입할 때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크기와 두께 면에서) 사이즈에 달려있다. 다이어리를 위해 가방에 들어갈 사이즈의 노트를, 드로잉을 위해 넉넉한 사이즈의 노트를 고르는 것 처럼.
  미래 디바이스도 카메라 화소가 얼마나 좋은가, 디스플레이는 얼마나 선명한가 등 세부적인 차이는 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기본 입출력장치와 인터넷 환경의 묶음이 된다는 점에선 차이가 없어질 것 같다. 그리고 각각의 디바이스가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은 거의 차이가 없다. 어차피 오픈웹과 클라우드 컴퓨팅으로 디바이스는 무엇이든 가능한 창구역할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디바이스를 고르는 데 결과적으로 중요한 것은 그 디바이스의 '사이즈'가 아닐까? 이 디바이스로는 영상을 볼거니까 TV정도의 사이즈인 걸로, 이 디바이스로는 돌아다니면서 쓸꺼니까 손바닥만한 사이즈인 걸 사야지. 디지털 기기를 사는 것은 노트를 구입하는 것처럼 된다.

 전혀 새로운 차세대 디바이스는, 그래서 잘 모르겠다. 전혀 새로운 경험을 가능케 하면서 기존의 입출력 장치에 포함되지 않아 하드웨어적으로 전혀 다른 디바이스라고 할 만한 입출력 장치 내지는 요소를 발견한다면, 그것이 차세대 모바일 디바이스의 형태가 될 것 같다. 그런 물리적인 요소가 없다면, 어떤 하드웨어를 제안하더라도 약간 모양을 달리할 뿐 기존의 것과 다르다라고 할 궁극적인 무언가가 없다.
 나로서는 전혀 새로운 '입출력 장치'가 무엇이 될지 잘 상상이 가질 않는다. 새로운 입출력 장치란 하나의 감각을 받아들이는 방식을 발명하는 것 아닌가! 한 학기 수업으로 나올만한 생각의 깊이가 아닐 것이다. Apple도, LG도 고민하고 있는 것이니까 우리에게도 과제로 주어진 것이겠지. 첨단의 끝에서 먼 미래를 상상해 본다는 것은 이렇게 재미있으면서도 지금의 벽을 깨는 눈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나 지금 시대처럼 거의 모든 벽이 무너지고 오픈되는 세상에서는 말이다.



ps. 이 수업의 결말도 참으로 상상이 가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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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orldofddanj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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