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증의' 영화제가 있다면 바로 부천영화제가 아닐까? 8회 이후에 있었던 파행의 결과 영화제는 휘청거렸고, 이래저래 실망을 많이 했었다. 하지만 장르영화에 대한 갈증을 해소해주는 거의 유일한 영화제이고, 부천에 대한 개인적인 추억과 기억들이 있기에 애정의 시선을 거둘 수 없는 그런 영화제가 피판이다. 작년에 '아 이제는 부천 진짜 안온다' 해놓고도 발표된 프로그램을 보고 두근거릴 수 밖에 없는, 나의 길티플래져 영화제.
빌루, 2009, 인도, 프리야다샨 감독, 35mm, 패밀리 판타 섹션
지난 전주영화제에서 나와 여러번 인연을 맺은 <비르와 자라>의 샤룩 칸이 나오(시)는 영화라서 주저없이 택했다. 느끼한 시선과 압도적인 음악, 때로는 오그라드는 감동의 순간들 모두 인도영화에서만 맛볼 수 있는 독특한 질감의 경험이다. 인도영화를 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세계 어느 영화보다 제작국의 도장이 강렬하게 찍혀 나오는 인도영화는 그 특유의 문화를 이해하고 즐긴다는 적극적인 자세의 관객들만 볼 수 있다. (나도 <비르와 자라>이전에는 3시간이 훌쩍 넘는 영화가 부담스럽고, 다음상영을 못본다는 이유로 피했었다.) 그런 적극적인 자세가 인도영화 특유의 낙천적인 분위기와 만나면 영화관은 그야말로 축제가 된다.
데드 스노우, 2009, 노르웨이, 토미 위르콜라 감독, 35mm, 금지구역
이어서 본 <데드 스노우>는 좀 아쉬운 구석이 많은 영화였다. 부천영화제 (매니아들에게는) 간판섹션인 '금지구역'의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부천영화제 영화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이 별로 없었다. 약간 무식하고 과격하지만 단순해서 귀여운 좀비와, 헐리우드 슬래셔물에서 영향받음이 명백한 캐릭터들의 난장질들은 이미 많이 봐 왔다. 정치적인 이슈를 끌어왔지만 설정에 그치고 만 이런 영화가 '금지구역'이라니. 잔인함을 즐기는 것 같아 '금지구역'은 안 보기로 다짐했었는데, 이런 영화가 '금지구역'이라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왠지 섭섭하고 아쉽다.
지하정, 1986, 홍콩, 관금붕 감독, 낭만도시 : 홍콩 제작사 D&B 특별전
이 영화의 감상포인트는, 그렇다 양조위다. 86년 양조위의 젊은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처음 화면에 등장할 때 극장에 흘렀던 작은 탄성은 이 영화를 보는 독특한 느낌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열화청춘>이나 <아비정전>이후에, 80년대 홍콩영화를 공감하면서 보는 건 어렵다고 단정지었다. '저주받은 걸작'이니, '비운의' 같은 수식어가 따라붙은 건 그 영화가 특별한게 아니라 그냥 그 당시 영화가 대중적인 이야기를 외면한 결과가 아닐까.. 하고 말이다. 장국영의 멜로를 기대했던 <열화청춘>은 칼부림이 등장하는 뉴웨이브영화라 이야기는 점점 안드로메다로 가는 것처럼 혼란스러웠고, <아비정전>의 듬성듬성한 이야기 구조는 옛 홍콩영화에 대한 나의 선입견을 만드는데 일조했다. 이런 영화들에 많은 사람들이 애정을 가졌다는 사실이 의아했다. 그 당시 홍콩의 영화들은 '정서'나 '느낌'이 영화를 지배하고, 그게 그 영화가 가진 의미의 전부가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지하정>은 그런 정서와 느낌 뿐만 아니라 이야기가 가진 공감의 힘도 있었다. 이야기의 가장 큰 회전축인 친구의 죽음을 파고들지 않고 점프하는 것은 80년대 홍콩영화들처럼 생경하지만, 죽음보다도 죽음에 의해서 무너지는 청춘과 관계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그 점프가 의미있다. 모든 것이 흔들리던 80년대 홍콩, 낭비하는 청춘들의 관계는 지금도 같은 무게로 와 닿는다. 영화는 마지막에 병실에서 양조위와 주윤발을 보여주다가 뿌옇게 흐린 채 실루엣만을 남긴다. 부유하는 청춘의 순간이 인상적이었다.
볼케이노 트윈의 모험, 2009, 뉴질랜드, 조나단 킹 감독, 패밀리판타
제작년 피판에서 본 최고의 영화 <블랙 쉽> 감독의 신작이라는 이유로 선택했다. 결과적으로 내가 <블랙 쉽>에서 좋았던 것들의 일부가 남아 있어 좋았지만 일부가 빠져 있어 아쉬운 그런 영화였다. 조나단 킹은 지역적인 특성을 장르영화에 잘 끌어들인다. 뉴질랜드, 하면 떠오르는 평화로운 이미지들 - 방목해놓은 양때나 여전히 화산활동을 하는 낮은 섬들 - 에 불길한 기운을 불어넣는데 이 충돌이 기묘하다. 하지만 환경과 계급에 대한 블랙코메디로 관객들을 실신시킨 <블랙 쉽>과 달리, 형제애나 신뢰에 대한 교훈들을 위한 씬들이 예상했던대로 그다지 극적이지 않은 영화의 절정을 향해 정직하게 쌓여간다. 어떤 감독은 자신의 첫 작품에서 자신의 장기와 재능 제대로 발휘해낸다. 조나단 킹이 바로 그런 감독이다. 개인에겐 새로운 시도가 의미있겠지만, 팬의 입장에서는 독특한(=삐뚤어진) 그 장기를 다시 보고싶다.
폰티풀, 2008, 캐나다, 브루스 맥도날드 감독, 부천 초이스 장편
근래 공포물 혹은 재난물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집단적인 중독에 집착하는 것 같다. 현대사회의 광기같기도 하고, 정치적인 이슈에 대한 은유로 해석하기도 한다. <폰티풀>은 어느 라디오 스튜디오라는 닫힌 공간에서 벌어지는 알 수 없는 재난에 대한 공포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절멸의 천사>와 같은 초현실주의에 영향을 받은 영화는 아니다. 친절하게 (혹은 억지스럽게) 새로운 인물이 스튜디오에 등장하면서 혼란스러웠던 사건은 그 맥을 잡아간다. (사실 여기서부터 다른 영화들과 닮아가면서 살짝 재미 없어지기도 한다.) 이 집단 감염에 언어라는 설정, 그리고 그 언어를 가장 극단적으로 전파하고 있는 라디오 스튜디오라는 공간이 주는 아이러니가 때로는 (보이지 않고 들리는 것에만 의존해야 한다는) 공포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방송을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웃음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근래에 본 어떤 영화들보다 매력적인 멜로신이 있기도 한, 독특한 영화였다. (개봉한댄다!)
13일의 금요일, 1980, 미국, 숀 S. 커닝햄 감독, 특별전 : 13
지금 우리세대는, 영화를 조금 특이하게 접했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장르영화의 클리셰가 정립될 60~80년대를 건너뛰어, 그것들을 복재하고 재생산하는 영화들을 먼저 접했다. <13일의 금요일> 이전에 <스크림>을 먼저 보고, '서부극'시리즈를 보기 전에 <놈놈놈>을 본다. 그리고 다시 그 원형을 더듬어 가 보면, 때로는 식상하고 진부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사실은 그게 원조고, 거기에서 출발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13일의 금요일>을 본다는 것은, 그런 클리셰의 원형을 찾는 재미라고 할 수 있다. '섹스하면 죽는다', '혼자 화장실에 가면 죽는다', '확실히 죽이지 않은 살인마는 꼭 살아 돌아온다' 같은 명제들이 고스란히 재현되는 면면이 흥미롭다. 이번에는 누가 어떤 방식으로 죽을까? 라고 기대하게 될 정도이다. 더불어, '제이슨'으로 유명하지만 '제이슨'이 살인마가 아닌 유일한 시리즈로서, 살인마의 광기는 설득적이고 강렬하다. "무적의 살인마"가 아닌, 설득의 옷을 입은 살인마가 한 대 맞고 쓰러졌다가 깨어나거나, 대상을 찾아 헤매는 장면은 프랜차이즈 슬래셔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인간적인 순간이다.
자유처녀, 1982, 한국, 김기영 감독, 회고전 : 에로틱스케이프-1980년대 도시성애영화
<박쥐>나 <마더> 같은 영화들은, 그 영화 자체만 가지고 이야기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박찬욱이나 봉준호라는 감독이 가진 특성과 족적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그 감독이 가진 고유의 질감을 가지고 영화를 볼 수 밖에 (혹은 봐야) 한다. 김기영의 영화들도 그러하다는 점에서, 그의 영화를 처음 보는 내가 이 영화를 이야기하는 건 피상적일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바로 직전에 본 80년작 <13일의 금요일>에서 청년들이 자유롭게 섹스를 즐기는 데 반해 2년 뒤 한국에서 김기영이 만든 영화 속의 인물들은 여전히 개방된 성이 어렵다. 그걸 깨 부수고 나온 여자는 자유처녀라는 호칭으로 동경과 질투, 비난의 대상이 된다. 80년대 영화라는게 믿겨지지 않을 만큼 야하고 (노출이 나온 건 분명히 아닌데 정말 야하다.), 미술과 조명은 세련됐다. "다리는 왜 떨어요? 빌어먹게", "여자는 인정에 약해서 탈이야~"같은 옛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주옥같은 명대사는 보너스.
13회 부천판타스틱영화제는, 여전히 문제는 많지만 이제는 꽤 안정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화제작이 적고 말랑말랑한 영화들이 대부분이어서 불같은 입소문으로 화제가 된 영화가 부족했다는 인상이다. <지하정>과 <13일의 금요일>을 올해의 피판영화로 꼽고, 내년에는 매력적인 영화들이 더 많이 소개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