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 미드나잇(Dopo mezzanotte, 2004)
세상 모든 영화 2009. 7. 23. 03:29 |
영화가 뭐길래,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을 수 있는걸까?
자연계밖에 없는 고등학교를 나와 공대밖에 없는 학교에 가서도 나는 영화를 꿈꿨다. 조명이 천천히 꺼지며 영사기의 탈탈거리는 작은 소리를 듣는 것이 물리보다 더 좋았다. 하지만 내가 살아가는 환경은, 영화와 너무 멀었고 좋아하지만 쉽사리 만날 수 없는 연인처럼 흠모하고 바라보곤 했다. 영상원이나 예술대학과는 거리가 먼 나로서, 제도권 밖에서 영화를 꿈꾸는 방법은 영화제와 각종 워크숍 뿐이었다. 방학이면 몇 일동안 밤을 새 가며 영화를 보거나, 워크샵을 통해 영화 속 마르티노가 보물처럼 들고 다니던 필름카메라를 다뤄보기도 했다.
영화의 주변부를 멤도는 내가, 영화박물관에 살고있는 마르티노의 이야기를 동경하고 흠모하면서 바라보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영화의 감상은 순수한 영화에 대한 감상이 될 수 없다. 나를 투영해 본 영화의 느낌이므로.
영화는 처음에 이런 질문을 던진다.
"여러분은 인물이 궁금할 것이다. 하지만 처음 영화가 등장했을 때 영화에서는 인물보다 배경이 더 중요했었다"
그리고 <애프터 미드나잇>에서는 진정으로 배경이, 인물보다 중요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내가 빠져들었고 부러웠고 흠모했던 것은, 영화박물관이라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영화를 사랑하는 삶을 살고있는 마르티노의 생활이었다. 매일 저녁에 아만다를 보고 밤새도록 낡은 필름을 꺼내보며 세상을 가감없이 필름에 담는 삶. 자신이 만든 영화로 사랑을 고백할 수 있는 삶. 그러다가 사랑에 빠지면 손 잡는 것으로 행복해 질 삶. 영화 외적으로는 이런 공간이 있는 이탈리아가 너무 부러웠고, 영화 내적으로는 그런 공간에서 시네필로 살아가는 마르티노가 부러웠다. 어쩌면, 마르티노의 삶과 사랑은 모든 시네필의 로망이자 판타지 일지도 모르겠다.
마르티노는 자정이 되었을 때 하루를 시작한다. 필름을 보고 사랑을 하기 시작한다. <애프터 미드나잇>이라는 것은 모두가 잠 든 고요한 시간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극장의 불이 꺼질때, 우리는 극장에서 매 순간 자정을 만나지 않는가. 그런 의미에서 제목은 극장의 불이 꺼진 뒤의 순간을 말한다. 우리가 필름을 보고 사랑을 하기 시작하는 순간.
영화에서 말한 것처럼, 삶은 영화가 아니다.
헌데
영화가 뭐길래,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을 수 있는걸까?
영화는 끝났지만 내 이야기는 진행중이다.
그리고 극장의 불이 들어왔지만 나는 좀처럼 일어나지 못했다.
내가 꿈 꾸던 것을 본 것인지 영화를 본 것인지 헷갈려서 주변을 허둥지둥 둘러볼 뿐이었다.
* 2007년 9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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