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월요일에는 명필름 15주년 기념상영의 일환으로 상영한 <접속> 을 봤다. 오래간만에 보니 기억나지 않았던 부분이나 이해할 수 없었던 것들도 와 닿으면서 참 좋았다. 영화가 나올 1997년에 나는 초등학생이어서 유니텔을 통한 채팅문화를 잘 알지 못했고 컴퓨터로 인터넷을 하게 될 때는 모뎀과 익스플로어 시대로 넘어가 버렸다. 한마디로 나는 '접속'이 그려내는 새로운 시대의 소통이나 감정을 겪었던 세대는 아니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그 시절의 감성이 참 좋았다. 음악을 듣고 싶어 가게를 오가고 라디오에 음악을 신청해야 했던 시기, 누군가에게 메일을 보내고 답신을 초조하게 기다리던 시기, 한줄씩 푸른 화면에 채팅을 하던 시기. 그것은 이제 불가능한 이야기, 이제 어려울 것 같은 감성이 아닌가 싶었다. 그런 새로운 예감이 있던 시대의 공기가 담겨있어 <접속>은 특별한 영화가 될 수 있었던 거 같다.
 오늘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막 컴퓨터를 하려는데 아파트 전체가 정전이 됐다. 무슨 일인지 알아보려고 엄마가 나간 사이 침대에 누워 헤드폰을 쓰고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Pale Blue Eyes'를 들었다. 사람들은 <접속> 엔딩의 'A lover's Concerto'를 많이 기억하지만 (그리고 사실 다시 보기 직전까지의 나도 그랬지만) 사실 영화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노래는 'Pale Blue Eyes'다. 에어컨이 꺼진 뒤 공기의 서늘함은 점차 줄어들고, 창문 너머로 여름밤의 푸른 불빛이 조금씩 들어오는데 마치 1997년으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나도 잘 모르는- 어느새 스쳐 지나가버린 시대.


'혼자 하는 라디오' 카테고리의 다른 글

8월 11일의 라디오  (0) 2010.08.11
6월 10일의 라디오  (8) 2010.06.10
5월 26일의 라디오 - 특집 : 2010년 봄학기의 메모  (2) 2010.05.26
Posted by worldofddanji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