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을 타고 서울대병원에 갔다. 너무 학생복 같은 것은 아닐까 싶은 흰 반팔 남방을 의식하면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먼 북소리'를 읽었다. 대방 쯤인가, 한 여자분이 내 옆에 앉으셔서 햄버거를 꺼내 드시기 시작했다. 살짝 옆을 쳐다보았는데 무한도전 돌+I 콘테스트에서 진지하게 태권도를 하시던 그분이었다. 얇은 슬라이스 햄과 허니머스타드 소스향을 진하게 풍기면서, 천천히, 햄버거를, 다 드셨다. 그런 자리에 앉아 혜화역을 가면서, 각자의 기다랗고 복잡한 생활 중에 어쩌다 잠깐 스쳐지나가기는 하지만 서로의 생활에 거의 - 때로는 전혀 - 영향을 미치지 않는 그런 사람들을 생각했다. 영어 회화 선생님이나, 동네 미용실의 연습생이나, TV 콘테스트에 출전한 사람이나, 술집에서 혼자 춤을 추던 여자분 같은, 그런 사람들. 그 사람들도 언젠가 학생복 같은 흰 남방을 입었거나 두피상태가 썩 좋지 않았거나 옆자리에서 힐끔힐끔 쳐다보던 학생으로 나를 생각할까. 그렇게 대부분 잊혀지지만 이따금 생각나기도 하고 그 사람은 잘 지내고 있을까 궁금하기도 한 그런 것들이 세상에 따뜻한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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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orldofddanj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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