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달리, 우리 시대의 청년들이 대면하고 있는 '삶/죽음'의 문제는 가령 90년대 초반 한국 사회가 체험한 거대서사의 종언과 같은 상징적이고 이념적인 성격의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생생하고 물질적이고 감각적이며 현실적인 '생존'의 문제에 더 가까운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은 취업과 보수와 재테크와 노후설계의 문제입니다. 대비하지 않으면 (대비한다 할지라도!) 비참한 미래가 펼쳐지리라 예상되는 이 불안한 시대에 하루키적 멜랑콜리 따위는 오히려 '사치'로 여겨질지도 모릅니다. 우울할 수 있는 '시간', 상실을 되새기며 여행할 수 있는 '시간', 실존적인 질문과 해답의 난맥에 빠져 영혼을 발효시킬 수 있는 '시간', 바로 그런 '시간'달을 박탈당한 채, 그들은 항상 쫓기는 상태, 추격당하는 상태에 놓여 있지 않습니까? 이런 점에서 이들에게 역시 서바이벌 키트는 '시간'입니다. 이들은 자신을 계발할 시간, 스펙을 쌓아야 할 시간, 노동을 해야 할 시간, 재충전을 해야 할 시간의 절박함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이 '시간'은 순수하게 물리적으로 환원된 두려운 시간입니다. 하루키의 시간에 미래가 없다면 이 시간은 미래밖에 없는 시간입니다. 또한 하루키의 시간이 진보의 환멸 속에서 웅성거리는 파편적 시간이라면, 이 시간은 (개인적) 능력의 신장에 대한 불안한 열망으로 결집된 시간입니다. 한마디로 규정하자면, 이 시간은 '시간을 주지 않는 시간'입니다. 시간의 부재가 그 본질인 시간입니다. 살아남은 자와 루저 모두에게 이 시간은 동일하게 자신의 법률을 적용합니다. 양자 모두에게 삶은 너무나 가혹한 결핍으로 나타납니다. 그것이 신자유주의의 폭력입니다.

* 살아남은 속물의 슬픔,『마음의 사회학』의 저자, 김홍중에게 묻다, 1/n, issue 2 : survival kit, 2010 Sp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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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orldofddanj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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