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여행기록 07

로드무비 2011. 2. 9. 03:29 |

1월 7일, Nan
Nan에서의 이틀, 정확히는 하루 반나절은 조금 독특했다. 새벽 5시에 도착해 어쩔 수 없이 400밧짜리 숙소에서 1.5박을 하고, 여행 중에 처음으로 뜨거운 물로 샤워를 했다. 거대하고 호화로운 방에서 오히려 조금 더 외로웠고, 마을이 자랑하는 사원들은 소박해서 귀여웠다. 작은 음식점과 편안하고 깨끗한 카페를 알게 된 것은 여행중의 발견이라고 할 만한 행복이었지만, 여행자가 없다는 이유로 트래킹도 국립공원행도 포기해야 했다. 카페에서 밀린 일기와 엽서를 계속해서 쓰면서 내일은 Nan을 떠나기로 했다. 분명 소박하고 조용한 매력이 있는 마을이었지만 왠지 마음이 착 가라앉으면서 자꾸 다음 여행을 생각하게 만드는, 장소가 문제가 아니라 내 마음이 여기와 맞지 않는 곳도 있다는 걸 인정하기로 했다.


1월 9일, Chiang Mai 트래킹
트래킹의 첫 코스는 코끼리 타기였다. 트래킹 프로그램을 살펴보면서 코끼리 타기가 없는 프로그램을 원했지만 모든 프로그램이 이를 포함하고 있었다. 코끼리 등에 올라탄 그 순간의 감흥은 즐거웠지만, 동시에 그 사실이 부끄럽고 불편했다. 관광을 위해 혹사당하는 코끼리 머리의 긁힌 자국이나 귓가죽에 뚫린 구멍은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태국을 여행하면서 종종 윤리의 문제가 나를 불편하게 했다. 카오산 로드에서 싼 값에 마사지를 받으며 누워있는 나를 자각하게 되는 순간. 내가 조금 여유 있다는 이유로 아무렇지 않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자본의 시스템을 휘두르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 때. K누나는 나에게 ‘그렇다면 제3세계에서 만들어진 다른 제품을 소비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혹은 네가 지불한 그 비용이 착취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그들의 능력을 하찮게 여기는 것이 아닐까’라는 날카로운 질문을 했다.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그들을 불쌍하게 생각했던 내가 오만했던 것이 사실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돈을 매개로 권리나 계급의 차이가 발생하는 순간이 나에게는 즉각적으로 죄스러운 불편함으로 다가왔다.


1월 9일, Chiang Mai 트래킹
원래 Nan에서 Chiang Rai에 가려고 했지만 그 날 버스가 없어 Chiang Mai로 가게 되었고, 같은 시기에 태국을 여행하는 친구 K가 있다고 해서 원래 가려던 시내 숙소가 아닌 한국 M게스트하우스에 갔다. K는 이미 숙소의 사람들과 친했고 소개 받아 저녁도 술도 함께 마셨다. 나는 여행은 철저히 혼자 움직이는 것, 많은 시간을 혼자 보내면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한국인들끼리 다니며 편한 말 편한 생각들만 하는 여행자들을 보면서 내가 우월하거나 더 여행자답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서로 여행의 에너지를 가진 채 충분히 친밀한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런 모습들이 부럽다, 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그렇게 여행해볼걸.’ 다음 날 Chiang Mai를 떠나는 K에게 엽서를 쓰면서 그런 예감이 어렴풋하게 들었지만, 그 때는 나도 잘 몰랐다. 그 생각에서부터 이번 여행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는 것.


1월 9일, Chiang Mai 트래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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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orldofddanj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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