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친구들과 <토이 스토리 3>를 봤다. 예매를 하려고 알아보니 서울에서는 단 2개관을 제외하고는 모두 3D로 상영중이었다. IMAX 포맷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화면손실 없이 영화를 보려면 이 비율로 봐야 할 것 같아(그런데 영화를 보니 클로즈업 샷 등에서 IMAX의 세로화면비를 전부 활용하던데, 일반 1.85:1 비율에서 상하 화면이 어떻게 잘리는지 상상이 안 간다. 이에 대해서 아시는 분?) IMAX 3D로 보니 1인당 무려 16000원을 내야 했다.  

IMAX는 그렇다 치고, 3D 상영이 너무 보편화 되면서 이게 관람을 강요하는 것 같아 불편했다. 나는 <아바타>도 3D 가 아닌 일반 디지털 상영으로 관람했는데, 그래서인지 사람들이 이 영화에 열광하는 그 3D의 본질을 잘 모르겠다. 우리세대가 영화를 예술이 아니라 엔터테인먼트로 받아들였고, 또 영화가 급격히 산업화되고 기획되는 시기에 태어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 많은 사람들이 극장에서 입체의 환영을 즐기면서 보는 것이 '영화'인가, 아니면 입체라는 '경험'인가에 나는 혼란스럽다. 정성일씨는 <아바타>에 대해 계속 비판을 하면서, '예술적 감흥을 느끼고 싶으면 차라리 인스톨레이션을 보러 가지 내가 왜 <아바타>를 보러 가야 하는가' 라고 질문을 제기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제 영화는 인스톨레이션이 되고 사람들은 영화가 아니라 새로운 공간적 체험으로의 인스톨레이션 겔러리를 가게 되는 것인가.
 "씨네21"에 '씨네산책'이라는 기획이 생겼다. 사실 내가 읽기에는 좀 어려운 글이었다. 이 코너는 정성일, 허문영 두 평론가가 인터뷰어와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766호 "영화비평가는 무엇에 쓰이는가? : 정성일과 허문영이 김영진, 김혜리, 이동진과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다(2)"에서 공감 가는 내용들이 많았다. 막연하게 내가 3D 영화에 대해 가졌던 불안감이나 거부감의 의미를 정리해 볼 수 있었다.

<아바타> 제임스 카메론, 2009


정성일 : 단적으로,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 3D에 대해선 어떻게들 생각하나요?
김영진 : 전 별로 안 좋아요. 그런 영화들이 주류 블록버스터의 세계를 바꿀 것 같다는 생각은 드는데, 그런 영화들이 넘쳐나는 건 별로 안 좋을 거 같아요. 내가 좋아했던 영화는 그게 아니었던 거 같아요. 나중에 안경 없이 볼 수 있는 3D가 나온다고 해도 마찬가지에요. 그렇게 되면 나는 그냥 사가(死家)로서 남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성일 : 김영진씨의 입장에선 영화의 죽음이 선언된 거네요. 말하자면 현재 진행의 영화와 결별하고 영화 고고학자가 되는 거네요.
김영진 : 굳이 얘기하면 그런 거죠. 내가 좋아했던 영화들하고 연속성이 있다고 생각 안 하거든요.
(씨네산책 中, 영화비평가는 무엇에 쓰이는가?, 씨네21 766호)


김영진씨의 대답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지금 3D 영화에 대한 알레르기 같은 거부감은, 내가 좋아했던 영화들과의 어떤 접점도 없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업>이 3D 효과가 환상적이어서 눈물 흘리거나 웃음짓게 만들었는가? <봄날은 간다>의 대나무 밭 신에서 대나무가 3D로 가까이에서 흔들린다고 내가 그 영화에 매혹되었을까? <토이 스토리 3>가 좋았던 것은 (비록 그 영화의 3D 효과는 적더라도) 이야기가 가진 힘이나 온기를 가진 캐릭터들이 여전했기 때문이었다. 비싼 돈을 주고 3D관람을 했지만, 3D 효과의 극대화에 급급하지 않았던 픽사가 나는 오히려 고마웠다.

<토이 스토리 3> 리 언크리치, 픽사, 2010


허문영 : 다시 이렇게 질문하면 어떨까요 영화사에서 새로운 기술이 나올 때마다 기존 영화 애호가들과 일부 학자들의 보수적 저항이란 게 있었고 그것이 늘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판명 난 것으로 되어버리지 않았습니까. 그러다 보니 지금 새로운 기술을 맞이하게 될 때 우리가 가진 미학적 보수성에 대해서 늘 조심스럽게 드러낼 수밖에 없는데,

김혜리 : 이동진 선배와 같은 맥락으로 동의하는 부분은 3D가 영화 기술에 일부 완전히 내면화가 되고 나면 지금은 없는 표현 수단을 하나 얻게 되는 것이고 없던 감각 하나가 더 깨어날 수 있는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해요. 촉각적인 경험 같은 새로운 차원이 하나 더 더해지는 것까지 부정하고 그건 영화가 아니야, 나의 영화는 이런 거니까 하는 건 예단이고 교만인 거 같아요.

이동진 : 지금은 3D의 초기 기술 단계고 우리가 본 게 3D 기술의 전부는 아니라는 거죠. <아바타>도 압도적이라는 느낌이 들지만 십 년 뒤에 <아바타>를 본다면 우리가 지금 <쥬라기 공원>을 보는 것 이상으로 낡아 보이겠죠. <쥬라기 공원>이 처음 나왔을 때 하이퍼 리얼리즘이라고 엄청 떠들었지만, 지금 다시 보면 기술적으로 걸리는 장면이 꽤 많잖아요. 우리가 영화를 여전히 필름이라고 부르지만, 지금은 필름이 없는 영화가 나오잖습니까. 단지 관행적으로 필름이라 일컬을 뿐이지요. 마찬가지로 스크린 없는 영화도 어떤 식으로든 나오겠죠. 그리고 그 이상의 영화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고요. 그럴 때 영화의 언어가 어떻게 발전할 것인가, 달라질 것인가 궁금하거든요.  ... (생략) ... 지금 3D가 대세라고 하는 건 영화 내적인 논리라기보다는 극장의 논리, 영화산업의 논리에 더 가까울 거예요. 자본은 그것이 극대화되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 밖에 없으니까요. 1만3천원에 상영하면 훨씬 더 이익이 많이 나는 거니까, 그렇게 생각 해보면 어떤 식으로든 대부분 그쪽으로 갈 것 같아요.
(씨네산책 中, 영화비평가는 무엇에 쓰이는가?, 씨네21 766호)


 물론, 지금의 3D가 3D의 완성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핸드폰에 GPS나 Wi-fi라는 새로운 요소가 더해진 스마트폰이 기존의 핸드폰이 주지 못했던 전혀 다른 경험을 하게 해 준 것처럼, 영화에서 3D라는 요소가 음향이나 컬러의 도입과 같은 새로운 영화의 '감각'이 될 수도 있다. 지금 3D를 반대하는 것은 유성영화의 도입을 결사 반대했던 과거의 사람들과 같은 실수는 아닐까. 혹은 내가 시대의 경계에 있기 때문이지 미래에는 3D가 영화의 당연한 요소가 되는 건 아닐까. 3D 반대는 너무 고루하고 근시안적인 태도가 아닐까.
그럼에도 불편한 것은 적어도 지금 단계에서 3D는 '그 자신의 과시'를 위해 영화라는 모체를 죽이고 있는 것만 같다. 본편을 보진 않았지만 <스텝 업 3D>의 예고편을 보면서 이 영화는 3D를 위해 만들어 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팔을 뻗고 몸을 쓰러트리고 레이져를 쏘아대는 장면을 '굳이' 3D가 강조되는 앵글에서 잡은 컷들을 보면서,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3D가 아니면 존재할 이유가 없는 컷들, 그리고 3D로 보지 않으면 이 영화를 보는 의미가 없을 것 같은 영화. 
 게다가 많은 극장들이 3D를 관객에게 강요하고 있다는 사실도 불편하다. 원하지 않아도 <토이 스토리 3>를 3D로 봐야 한다. 그럴 수 밖에 없다. 적은 비용으로 2D를 3D로 전환한 영화들을 보면 솔직히 화가 난다. 3D 효과'라는 말처럼 현재의 3D를 잘 설명하는 말은 없다. 그것이 (영화의 다른 요소와 융합되어 감흥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산업적인' 요소가 어떤 효과(노골적으로 그들의 입장에서는 돈을 더 많이 벌어다 주는 것)를 발휘해 주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거기에 들어가 있는 것 아닐까. 
 3D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예전에 부산국제영화제 뉴스레터에서 본 글이 생각났다.


저희가 ‘영화제 3.0’ 라는 용어를 생각해 낸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희는 가깝게는 1,2 년, 멀게는 10년 후의 부산국제영화제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영화제를 둘러 싸고 있는 외부환경이 너무나 급박하게 변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국내의 멀티플렉스 극장들이 조만간 전면적으로 35m 영사기를 디지털로 전환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저희 부산국제영화제는 상영관 대부분을 멀티플렉스 극장을 대관하여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세계에서 상영포맷이 디지털로 전면적으로 바뀌려면 아직 시간이 좀 걸릴 것입니다. 즉, 제작자나 배급사에서 35mm 프린트를 보내겠다는데, 디지털 영화관만 있다면 난감한 상황이 생기는 것이지요. 아마도 이런 상황은 곧 닥칠 것입니다. 다행히 저희가 현재 짓고 있는 부산영상센터 안에는 4개의 상영관이 있고, 거기에는 듀얼 방식(35mm, 디지털)의 영사기가 들어 갈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전체 35mm 상영작 수용이 불가능할 것입니다.
(김지석 부산국제영화제 수석프로그래머, Inside Piff, 2010년 뉴스레터 3회)


 솔직히 영화제에서 이렇게 멀리 바라보고 고민하고 있는 줄 몰랐기 때문에 글을 읽으며 놀랐다. 실제로 많은 극장이 디지털 전용관으로 전환되고 있는데, 미래에는 내가 사랑했던 영화들은 어디서 볼 수 있는가. 우리는 꼭 디지털 리마스터링 된 영상만을 보거나,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영화가 디지털 리마스터링의 수혜를 입을 때까지 두 손 모아 기다려야 하는 것인가. 70mm의 죽음처럼 35mm의 영화(를 볼 기회)가 죽는다면, 나는 디지털과 3D를 원망할 것 같다.


허문영 : 정 선배는 <아바타>를 보고 3D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했지만, 3D와 관계없을 것 같다고 생각되는 시네아스트들이 3D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언제가 되든 3D가 대세가 되는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비평가로서가 아니라 시네필로서 느끼는 두려움의 정체는 어떤 건가요?
정성일 : 간단하게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영화의 새로운 단계로 넘어가기. 그때 저의 가장 큰 두려움은 내가 영화에 매혹되었던 그 부분이 사라질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내가 영화에 매혹됐던 바로 그 대목. 나는 영화의 그런 환영성을 스펙터클의 리얼리티 때문에 사랑했던 건 아니거든요. 오히려 영화가 안을 수밖에 없는 기술적 제약과 그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만들어진 새로운 규칙들, 그 한계를 넘어서려는 수많은 미학적 시도들의 역사, 숏과 리버스숏의 체계들의 프로젝트, 고전영화와 결별한 모던영화라는 토픽의 단절. 혹은 1960년대와 70년대 영화 사이의 단절을 이루는 수많은 결정들, 그사이에서 문제를 해결한 것은 기술적인 것이 아니라 예술적인 시도였다는 것 입니다. 그 과정이 영화에 대한 나의 매혹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를 기술이 나서서 해결해줄게, 사실 너의 매혹은 기술적인 스펙터클이야, 라고 할 때 내 매혹을, 사랑을 잃어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있습니다.  ... (생략) ... 정확하게 두려움의 정체는 매혹에 대한 상실일 것입니다.
(씨네산책 中, 영화비평가는 무엇에 쓰이는가?, 씨네21 766호)

<사형수 탈주하다> 로베르 브레송, 1956


 나도 걱정된다. 내가 좋아하던 영화가 사라질까봐. 얼마 전에 본 <사형수 탈주하다>에서 주인공이 프레임 밖으로 뛰쳐나가 감시원을 죽이는 장면을 봤을 때의 흥분이 생각난다. 흰 벽과 검은 하늘로 분절된 프레임을 응시하며 일이 어떻게 벌어지는 걸까, 작은 소리에도 귀를 예민하게 놀려야 했다. 프레임에 담지 않는 것으로 만들어내는 긴장감이 멋졌다.
 가리고 멈추고 머뭇거림으로써 생겨난 황홀했던 순간들이, 눈 앞으로 튀어나오는 주먹과 다리의 스펙터클 함으로 대처될 거라는 불안감이 슬프다. 그래서 나는 3D가 걱정된다.

'세상 모든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돌아보는 마음 (2010)  (2) 2011.11.16
<노르웨이의 숲> 티져 예고편  (6) 2010.07.18
두근두근 시네마떼크  (9) 2010.04.10
Posted by worldofddanji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