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글씨를 배우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는 손글씨라는 게 연습해서 만들어진다는 것에 그다지 동의하지 않았다. 엄마나 아빠의 손글씨는 몹시 어른스럽고 우아했는데 나는 그것들을 도저히 따라 할 수 없었다. 손글씨라는 건 연습하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어른스러운 그것을 가지게 되는 줄 알았다. 제 나이에 잘 맞는 옷을 입게 될 거라고 그때는 믿었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될지, 어떤 손글씨와 어울리는 사람이 될 것인지 알지 못한 채로 내 손글씨를 익혀야 했다. 차라리 내가 누구인지, 어떤 손글씨를 가지고 싶은지 알게 될 때까지 손글씨를 연습하는 걸 멈추고 싶지만, 삶은 그렇게 순서를 따져가며 돌아가주지 않는다.
결국 나는 어른스럽지도 사랑스럽지도 않은 어정쩡한 손글씨를 가지게 되었다. 그런 손글씨가 나에 대해서 말해주는 것이 또 있을 것이다.
2013.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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