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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자신의 상황과 가치관, 몇가지 선택의 갈래들, 그리고 각각의 선택이 불러오는 걱정을 (글이나 말로) 온전히 전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까? 나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열심히 단어를 골라내 세심하게 문장으로 배열하면 내 삶과 시선을 상대방에게 고스란히 전달할 수 있을거라는 말이 나에게는 지나치게 낙관적이고 로멘틱하게 들린다. 나를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면 상대방은 표면에 드러난 아주 작은 근거들로 결론을 내리고 충고를 할텐데, 그렇게 나온 결론이 다시 나에게 얼마나 맞을지에 대해 나는 아주 회의적이다.


둘째로, 말이나 글로 고민을 표현할 수 있다면 그 고민은 이미 어느 정도 내 안에서 정리되어 있는 것 같다. 추상적이고 다층적인 지점들을 선형적인 문장으로 풀어내는 순간 고민은 평면적으로 변하고 단어는 한 쪽으로 기울어진다. 어느새 열심히 변명하고 있다. 그 변명은 선택을 공정하게 제시하기 위한 노력일 때도 있었지만, 마음은 더 기울었는데 논리가 부족한 것 같아(혹은 타인의 시선이 느껴져) 그 격차를 메꿔보려는 시도일 때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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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거나 '좋아하는 것을 하라' 같은 조언을 싫어한다. 모든 사람이 하고 싶은 것이나 좋아하는 것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닐 뿐더러, 사람마다 선택의 기준은 다른데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삶'을 절대불변의 가치로 두고 다시 사람을 평가하는 것 같아 폭력적으로 들린다.


대학원 진학으로 고민하고 있을 때, 누나는 두가지 옵션을 듣고 조언을 해 주는 대신에 '너가 평소에 선택하는 것들과 같은 흐름에서의 선택'을 하면 좋겠다는 요지의 말을 해줬다. 그게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가치관에 어긋나지 않으면서 적어도 지금의 나에게는 솔직한 선택이라고 느꼈다. 더해서 내가 끝까지 경계했던 것은 이 선택이 '무언가를 증명하기 위한 것'은 아닌가 라는 지점이었다. 증명하기 위해 선택해서 불행해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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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선택에 대한 조언을 구하는 글을 볼 때면, 이 사람이 글을 통해 자신을 상대방에게 잘 전달하고 상대도 최대한 자신의 입장에 서서 고민해 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구나, 라는 인상이 먼저 다가온다. 아름다운 자세이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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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orldofddanj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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